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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장관들, 반대파와 얼굴 맞대고 치열하게 소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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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이사장은 연구원 창립 2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엔 사회적 갈등이 뒤따른다”며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종근 기자]

세계경제연구원(IGE)이 지난 10월로 창립 스무 돌을 맞았다. 사공일 이사장이 문을 연 1993년엔 오해도 있었다. 고위 공직 출신자의 사랑방쯤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사공 이사장이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IGE는 세계 석학과 명사들이 글로벌 정치·경제의 흐름과 한국의 과제를 놓고 국내 인사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는 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달 31일엔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20주년 국제콘퍼런스를 열기에 이르렀다. 사공 이사장은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외 경제 전문가와 지도자, 기업인들 간에 가교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만나 지난 소회와 한국 경제가 나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들어 봤다.

 “박근혜정부의 경제팀은 국민과 치열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사공 이사장이 가장 힘줘 한 말이다. 그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과제는 세 가지”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팀이 반대파들과 터놓고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통으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 경제 활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가 급진전된 상황에서 기업은 국경을 쉽게 넘나든다. 일자리가 들락거린다는 얘기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잡(Job) 프렌들리’인 셈이다. 둘째는 교육개혁이다. 교육 수준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좌우된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셋째는 사회안전망의 확충이다. 세계화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실패한 사람들이 재도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사회 안전망은 꼭 필요하다.”

의료·관광 등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 시급

 -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국내외 기업이 투자를 원하는 분야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줘야 한다. 우리에게 시급한 건 의료와 관광 등 서비스산업 쪽이다. 이 분야 규제를 풀면 국내외 기업의 투자가 늘면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날 것이다.”

 - 영리병원 허용 등을 놓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팀이 TV토론 등에 나서 치열하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방송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국가 전략과 현안을 설명해야 한다. 반대파들과 적극적으로 논쟁해 국민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 현 정부 들어 그런 토론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된다. 경제 장관들은 반대파들과 얼굴을 마주 대고 대화하고 논쟁해야 한다. 정부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를 공개하면서 말이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게 정책 성공의 지름길이다.”

 - 관료들이 규제를 내심 선호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를 직접 챙겨야 한다. 대통령이 실적을 점검하고 다음 계획을 잡아나가면 공무원 조직은 움직이게 돼 있다.”

 사공 이사장은 폭넓은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2010년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주관하기도 했다. 그의 눈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 외교가 어떻게 비쳤을지 궁금했다.

 - 박 대통령이 외교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취임 첫해에 G20 회의 등 글로벌 정상 회동이 많은 것은 좋은 기회다. 박 대통령이 여성인 점도 관심 대상이다. 다만 정상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용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 국내용 발언이란 무슨 뜻인가.

 “ 장관이나 참모들이 홍보 욕심에 우리 국민들이나 관심을 가질 주제로 말씀 자료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한국 정도의 위상이면 창조경제 같은 국내용 발언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대신 글로벌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 외국 정상들이 주목할까.

 “요즘 세계엔 이렇다 할 리더가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은 자국 문제 때문에 여념이 없다. 두 사람은 서로 견제하고 있다. 상대가 제시한 의제 등을 비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팀, TV에 자주 나와 국민 설득해야

 - 그래서인지 요즘 G20 정상회의 등이 다자가 아닌 양자 외교 무대로 변질된 듯했다.

 “맞다. 공통 이슈가 아닌 양국 현안을 논의하는 모양새다. 앞장서 글로벌 어젠다를 제시하고 합의를 유도하는 인물이 없어서 그렇다. 이런 때 박 대통령이 한국 자랑이 아닌 공통 어젠다를 제시하면 환영받을 게 분명하다.”

 - 어떤 효과가 있을까.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새로운 금융질서를 주창한 것처럼 박 대통령이 국제 사회가 공감할 어젠다를 제시하면 국격이 높아진다. 이보다 더 좋은 국위선양이 있겠는가.”

 사공 위원장은 국내 경제 관료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화를 주장했다. IGE의 설립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국내에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 IGE 20년을 돌아본다면.

 “설립 초기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국내 언론계와 학계, 정책 담당자들이 조찬 강연회에 많이 참석했다. 서울 하야트호텔에서 열린 창립 회의 때는 주변 교통이 혼잡해질 정도였다(웃음). 초심을 잃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초기에 오해도 있었을 법하다.

 “사실이다. 경제수석과 재무장관 출신이 연구소를 열었다고 하니 사랑방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해 연구소 간판을 내건 줄 아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 정치권 러브콜이 많지 않았는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서 직업 윤리 때문이다.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박 대통령, 국제사회 공감 어젠다 제시를

 - 고위 공직자 출신이 세운 연구소 중 활동이 가장 왕성한 듯하다.

 “내가 IGE를 정치권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면 연구원은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또 경제수석과 재무장관 경력을 활용해 기업이나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았다면 독립성을 잃었을 것이다.”

 - 어떤 독립성을 말하는 것인가.

 “IGE 초청 인사를 봐라. 국내외 전문가들 중 진보적인 인물도 적지 않다. IGE는 열린 공간이라고 자부한다.”

 실제 IGE가 초청한 해외 인물 가운데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미국 리버럴(진보) 성향 학자들이 다수 있다. 국내에선 효율보다 형평을 강조한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인 예다.

 - 연구원의 장수 비결은 무엇이라 보나.

 “전문적인 최신 트렌드와 이슈들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제시하니 호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또 해외의 유명 석학과 명사들도 우리의 초청에 적극 응해 줬다.”

글=강남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사공일 1940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났다. 64년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5년 만인 69년 UCLA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대와 영국 셰필드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국내로 들어온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시절인 80년대 초반 경제개방을 주창했다. 특히 금융시장 개방 스케줄을 짜는 역할을 주도했다. 그는 김재익 수석이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숨을 거둔 83년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이어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이명박정부에선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과 2010년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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