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확보에 치우쳐 … 기부 활성화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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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예산정책처가 정부가 추진하는 기부금의 세액공제 전환보다는 기존의 소득공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회법에 의해 설치된 기관으로 국가의 예산·결산 및 재정운영과 관련해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연구·분석을 하는 곳이다.

 예산정책처는 지난달 29일 펴낸 ‘2013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에서 “기부문화 확대라는 정책적인 효과를 고려할 때 소득공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사회 전체적으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때 고소득자는 과세표준 금액을 낮추는 수단으로 기부금을 납부해 소득공제를 받으려 할 유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까지 소득공제를 받았던 기부금은 내년부터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 소득공제는 일정 부분을 과세 대상 소득에서 제외(공제)하는 것이며 세액공제는 최종적으로 산출된 세금(세액)에서 일부를 빼주는 것이다. 기부금이 세액공제 대상이 되면 소득공제에 비해 세제 혜택이 줄어든다.

 보고서는 기부금을 포함한 특별공제 항목(의료비·교육비)의 공제제도를 분석하면서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영국과 일본, 독일은 기부금에 대해 소득공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는 세액공제를 하고 있지만 기부금에 대해서는 66%의 세액 감면을 하고 있다. 세금을 깎아줘서라도 부자들이 기부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3000만원을 초과하는 고액 기부에는 30%의 공제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세액공제 방식이 기부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에 따라 최초 정부안(금액에 상관없이 15% 세액공제)을 보완한 것이다. 하지만 관련 시민단체는 여전히 “기부금에 한해서는 종전처럼 기부금의 30%(지정기부금 기준)를 소득공제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 해 근로소득자 기부금의 절반(53%)은 총 급여 9450만원 이상인 상위 10%에서 나왔다. 서울대병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연 소득이 1억원인 사람이 1000만원을 법정기부금 기관(사회복지공동모금회·대학·병원 등)에 기부한다면 지금보다 9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재부는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금액에 따라 차등 적용하기로 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예산정책처는 “추가적인 세법 개정 내용을 여러 차례 발표한 것으로 보아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항진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 세제분석과장은 “세수확보 측면에만 치우쳐 기부문화 확산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기부금 공제=기부금은 법정·지정·종교기부금으로 나뉜다. 법정기부금은 국가·지자체·교육기관·의료기관·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등에 내는 기부금으로 100%를 소득공제 받는다. 지정기부금은 국제구호단체나 사회복지·환경단체 등 대부분의 비영리법인이나 민간단체에 내는 기부금이며 30% 한도로 소득공제 혜택을 본다. 종교기부금은 10%로 공제 한도가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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