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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목은 안 된다. 총 영도력 확인|10·2항명징계 뒤의 공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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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화당은 10·2항명사태에 대해 두 당무위원을 탈당케 하는 등의 예상 밖의 강경한 징계를 했다. 69년 권오병 문교를 해임케 한 4·8항명 때 양순직·예춘호·정태성·박종태·김달말 다섯 의원을 제명했던 것에 비하면 탈당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가혹한 징계다.
4·8항명이 개헌을 반대, 대통령의 의도에 정면으로 반대했던데 비하면 이번 사태는 어떤 점에선 항명이라기보다 당내반목의 결과다. 당총재인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 대해선 항명이기보다. 간부간의 반목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같이 가혹한 징계를 한 것은 당의 불화요소를 제거하고 일사 불란 체제로 복귀시켜야겠다는 결심을 엿보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파벌은 없지 않더라도 그 반목이 총재의 지시마저 거슬릴 수 있는 고질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표시이다.
박대통령은 내외정세에 비추어 어느 때보다 단합을 중시해 왔다. 미·일·중공 관계의 변화, 남북회담·경제시련 등 내외정세는 국민적 단합을 필요로 하고있고 국민적 단합을 선도해야 할 집권당의 결속은 1차적인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내무부 인사파동을 싸고 4인 체제와 반4인체제의 대립이 표면화했을 때 대통령은 난국에 직면해서 집권당 간부들이 반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
최근 몇 주의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도 정부는 북괴의 산업·군사정세 및 간첩의 빈번한 침투를 설명했었다. 집권당의 간부라면 어려운 여건을 당해 당 내외 반목은 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 이번의 강경한 문책의 배경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징계의 과정을 살펴보면 박 총재의 지시와 당무회의의 결의로 열린 4일의 공화당 당기 위는 30명의 이탈자를 조사, 분류했다. 이보다 앞서 있었던 다른 계통의 조사와 종합해서 길재호-강성원-문창탁 의원 선에서 가표를 찍은 의원이 18명, 김성곤-김창근 의원 쪽에서 8명, 그 밖의 4명이란 분석이 나왔다는 얘기다.
당기 위가 열리기에 앞서 길재호·김성곤 의원은 탈당 계를 냈고 당 요원이 직접 이를 해당지구당에 접수, 탈당증명서를 받아 4일 밤에 길전식 총장에게 전달됐다.
길전식 사무총장은 이 탈당증명서를 확인하고 5일 상오 박 총재에게 이를 보고했다.
항명의 행동대장으로 지목되었던 강성원·문창탁 의원의 탈당 계를 받았다가 의원직이 상실되는 탈당은 주모자에 국한시키고 이들에게는 가벼운 징계를 하라는 박 총재의 지시에 따라 김창근(국회재무위원장)·김성원·문창탁 의원은 6개월간 정권처분을 받았다. 또 해임당사자인 오치성 내무장관은 당내 반란의 진원적 책임을 물어 같은 징계조치를 당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오 내무에 대한 징계는 4인체제의 거물들이 탈당, 의원직까지 상실되는데 대한 상대적 응징으로 취해진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당은 징계란 큰 시련을 겪는 가운데 단합의 명제를 뚜렷이 했다. 그러나 김성곤·길재호 두 당무위원의 집권당내 비중과 당 내외에 미쳐온 영향력에 비추어 충격과 반응이 어느 숙당 때보다도 큰 것이 틀림없다.
이런 징계조치에 이어 박정희 당총재는 곧 내무장관을 경질하고 당 지도층을 개편할 예정인데 백남억 당의장과 길전식 사무총장은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새 원내총무에 누가 기용되든 간에 이번 파동으로 백남억·길재호·김성곤·김진만 의원이 주축을 이루던 이른바 4인 체제는 와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그렇다고 반4인 체제 「라인」이 이번 파동을 계기로 완벽한 주도권을 잡았다고 볼 수는 없다. 반4인 체제에선 숙당의 범위를 더욱 넓힐 것을 희망했다는 얘기도 있다.
4인체제의 핵심 「멤버」가 당을 떠나긴 했지만 새로 구성될 당무위원이 반4인 체제 일색이기도 어려울 뿐이니라 양대 세력의 균형이 일시 깨진다 하더라도 새로운 견제세력이 대두될 가능성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내 일부에서는 비록 길재호·김성곤씨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이번 항명에 가담한 30여명과 그 밖의 추종세력들을 원격 조정할 여지는 없지 않은 것으로 보고있다.
이 같은 견해는「5·16」혁명의 주체로서 그 동안 정부-여당의 요직을 맡아온 길재호 씨나 폭넓은 정치로 많은 여야정치인들과 남다른 인간관계를 쌓아온 김성곤씨가 당내반란을 일으킬 때는 이런 사태가 올 것까지를 계산에 넣고 배수진을 쳤을 것이라는 데서 뒷받침을 얻고 있다. 같은 4인 체제라는 이유로 백남억 당의장이 박 총재와의「대화」를 잃은 후 길전식 사무총장이 당무위원들의 사표를 총재에게 제출하고, 징계문제와 당 개편에 대한 협의를 받았었다. 길 총장은 새 원내총무에 이병희 무임 소장 관을 추천하려 했으나 본인의 사양으로 인선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 당의장과 김진만 당 재정위원장이 4일하오 청와대에 갔었으나 박 총재와 충분한 얘기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떻든 이번 항명파동은 4인체제의 와해라는데 특징이 있다. 그렇다고 75년과 관련하여 공화당의 후계문제가 정립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 다만 총재의 영도력, 그러고 김 총리의 선두주자로서의 위치는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국회운영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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