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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동구해빙의 새 이정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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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젠티(79)추기경의 헝가리 출국은 교황청과 카다르 정권, 내지는 전 공산권간의 화해작업에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배경에는 바디칸의 자유화 경향과 동방정책 추구라는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정치감각이 깔려 있고 유럽의 탈냉전이라는 국제조류가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진보적인 쾨니히 추기경과 프랑스의 자유파 마르크스 철학자 로제·가로디 간의 대화라든지, 교황 바오로 6세의 아시아 순방, 카사롤리 대주교의 모스크바 방문, 월남전 종결에 관한 교황청의 성의, 바티칸 내의 보수원로들의 퇴진과 신진들의 대두 같은 것이 모두 로마 교회와 동구·소련간의 점차적인 긴장완화를 초래한 계기들이었다.
2차 대전 중 반 나치 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했던 민젠티 추기경은 45년 추기경서품과 더불어 다시 반공운동에 종사하다가 48년12월 무기형을 받고 재차 투옥되었다.
56년의 헝가리 반공 봉기 때 석방, 그러나 탄압의 비극과 더불어 다시 미국 외교사절의 아파트에 망명, 15년의 세월을 고고한 집념 속에 흘려보냈다.
그의 연금 상태는 어느 의미에서는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다.
카다르에게 사면을 청한다는 건 자신의 유죄를 시인하는게 되고, 자기가 불법정권이라고 규정한 헝가리 공당정권과는 절대로 타협이나 교섭을 할 수 없다는 신조를 가지고 그는 오히려 헝가리에 남아 전전의 가톨릭의 권위를 회복하는 반공정치운동을 염두에 두었다.
미국이 카다르 정권과 대사급 외교관계로 승격했을 때 그는 격분한 나머지 밖에 나가 밤으로 걸 낮으로 지키고 있는 비밀경찰의 손에 체포되겠다고 우긴 일도 있었다.
미국은 이 문제가 바티칸과 헝가리 양자간의 문제라고 발뺌을 했고 바티칸이나 헝가리도 이 골치 아픈 문제를 끝내 버리고 싶어한게 사실이다.
연금 중의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사인 쾨니히 추기경도 시종 그에게 망명을 권유했고 카다르도 지난 3월 UPI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민젠티 문제는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고 말했었다.
마침내 7월초 바티칸의 공산권 문제 전문가와 헝가리 당국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그의 출국이 결정되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 4월 바오로 6세와 헝가리 외상 야노시·페테르 간에 원칙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외교관들에게 미사를 지내주고 혼자서 정원을 산책하던 노 추기경의 자유 복귀는 완고한 보수 가톨릭과 완고한 보수공산주의간의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있다. <유근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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