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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차와 절충 전망|동상이몽 여·야의 지방 백치 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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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화·신민 양당이 23일 각기 당무회의와 원내 대책위에서 지방 자치제 실시에 관한 당론을 결정함으로써 8대 국회의 가장 큰 정치 「이슈」가 될 지방 자치제는 정치의 표면에 부상했다.
그러나 양당의 견해차가 너무 커 이견 조정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더우기 공화당이 행정 구성 개편과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국회의원 선거 제도를 이 문제와 곁들여서나 앞서 조정해 보려는 입장 이어서 지방 자치제 실시 문제는 복잡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취약한 지방 조직을 강화하여 정권 교체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속셈으로 72년부터 지방 자치를 실시하자는 신민당에 맞서 공화당은 3차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나면」77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실 지금 지방 자치제 실시의 문제가 7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75년 이전에 실시하느냐에 초점이 있었던 만큼 77년 이후에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공화당의 태도 표명은 어떻게 보면 문제 제기에 대한 전면적인 행인으로 볼 수 있다.
공화당의 부정적 접근 태도는 정쟁을 지방까지 파급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지방 의원의 당적 배제를 주장한 내용면에서도 나타난다.
비록 신민당이 지방 의회 의원의 무소속 출마를 허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자는 가장 큰 속셈이 야당의 유명 무실한 지방 조직을 활성화하자는 데 있었던 만큼 이런 공화당의 주장은 지역구 의원들의 경쟁자를 줄인다는 장점도 있으나 야당의 기본적 논리에 대한 정면 부인으로 간주된다.
이 두 가지 기본 문제 외에도 도지사와 군수는 임명제로 하더라도 시장은 선출제로 해야한다는 야당 주장에 반해 공화당은 자치 단체의 장을 모두 임명제로 해야한다고 반대한다.
여야의 이러한 견해 차이는 지방 자치를 보는 기본적 시국관의 차이에 연유한다. 야당은 지자제 실시를 박탈된 민권의 회복으로 보는 반면 여당은 이를 배부른 후에나 생각하는 장식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23일 공화당 당무 회의에서는 『네오·센트럴리제이션(행정부 우위의 중앙 집권제)의 세계 추세에 우리만 역행하는 것 같다』『다음 선거 후로만 미루고 실시 연도는 못 박지 말자』『신민당이 떠들어대니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당론을 정했다는 인상을 받지 않도록 하자』『풀뿌리 민주주의는 서구 사회나 통하는 것이지 근대화가 시급한 우리에게는 부적합하니 부정적 사례를 많이 모으자』는 등 지방 자치제 실시에 회의적인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부정적 바탕에서도 공화당이 지방 자치제 실시에 대한 태도를 그나마 라도 정한 것은 균형 국회에서 야당의 공세를 뚫고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전술의 차원에서 연유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지방 자치는 52년4월 지방 의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됐다. 자유당 정부 하에서는 자치 단체 의장의 선출을 임명제로 하느냐, 선거제로 하느냐를 놓고 몇 차례 법개정을 거듭하다가 4·19 후 민주당 정권 때 전반적인 실시로 급격한 변화를 했다.
그러던 것이 5·16 후 61년9월1일에 제정된 「지방 자치에 관한 임시 조치법」에 의해 지방 자치법의 효력이 정지됐고 『최초의 지방 의회 구성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부칙 때문에 그대로 10년간을 끌어오고 있다.
신민당은 10년간이나 법을 만들지 않고 지방 자치를 실시하지 않는 것을 위헌 행위라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은 5·16 전 같은 지방 자치의 병폐를 없애는데는 10년이 문제가 아니며 더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공화당이 선행 조건으로 내세우는 여건이란 것은 현재 37% 정도인 지방 재정 자립도를 60% 정도로 높이고 민도를 개발하며 인구나 크기, 교통망 등으로 보아 불합리한 행정 구역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 이에 수반하여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등 국회 의원 선거 제도 개편도 내세운다. 행정 구역 개편을 매개로 지방 자치제에 선거 제도 개혁이 관련된다는 점은 정책 특위 정치 분위에서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선거 제도 개혁안의 성안이 거의 끝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목할 일이다.
공화당은 이러한 선행 조건을 75년 선거전까지 갖추고 지방 자치법 개정안과 지방 의원 구성 시기를 규정할 지방 자치 실시에 관한 법안을 8대 국회 임기 중에 여야 협의를 통해 만들기로 했다. 이런 태도는 지자제에 대한 종래의 부인일변도에 비하면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신민당은 지자제를 72년부터 실시하기 위해 78회 정기 국회의 예산안 심위 등 중요 안건 처리 과정에서 최대의 투쟁을 벌일 계획이나 공화당의 태도가 긍정적이기만 하면 강경 태도를 수그러뜨릴 태세다. 이런 여야의 태세에서 이 문제의 타협이 조심스럽게 모색될 여지가 있다.
공화당은 77년에 서울·부산시와 도의 의회를 구성하고 10대 국회 임기 중인 81년쯤에 시·군 의회를 구성한다는 단계 실시 방침을 정했는데 75년 이전으로 서울과 부산의 지자제 실시를 앞당길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사람이 많다. 여당이 지방 자치의 여건 중 가장 큰 요인으로 드는 지방 재정 자립도가 서울·부산은 비교적 높다는데 그 논거가 있다. 다만 과거 경험으로 근대화를 어느 정도 이룰 때까지는 지방 자치제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해온 당 고위층의 소신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문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여야 고위 회담을 통해 직접 안 결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자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과 현실의 최대 공약수를 여야가 타협과 설득을 통해 찾아보려는 성실성의 강도에 이 문제 타결의 열쇠가 있는 것 같다.<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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