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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태풍 경제위기 시즌2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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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가 31일 세계경제연구원 국제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한 뒤 참석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글로벌 경제위기 ‘시즌 1’은 장밋빛 결말을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어둡고 위험한 경제위기 ‘시즌 2’가 다가오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경고했다.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이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31일 서울 소공로 플라자호텔에서 개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다. ‘새로운 리더십 아래서의 세계 경제 질서’를 주제로 한 이번 포럼에서 스트로스칸은 특별연설을 했다. 그는 향후 세계 경제를 위협할 요소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지도력의 부재와 협력의 부재다. 그러면서 경제위기 ‘시즌 2’의 주인공으로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의 정상들을 지목했다.

“미국의 고용시장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그런데 미 의회는 또 한 차례의 정부 폐쇄(셧다운)와 국가 부도(디폴트)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구심력을 잃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효과가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 스트로스칸의 현실 진단이다. 그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지도자들 모두 자기 나라 안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글로벌 경제위기를 해결할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스트로스칸은 성추문으로 2011년 IMF 총재 자리에서 물러났고 올 들어 투자은행가로 변신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총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만 어조는 한층 강력해졌다. 한때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그인 만큼 유럽 지역 정상에 대한 비판은 더 날카로웠다.

 “유럽은 국내총생산(GDP)의 2%에 불과한 그리스 재정위기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만큼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 지금도 유럽 지도자들은 유럽중앙은행(ECB) 뒤에 숨어 ECB가 유동성도 조절해주고 경쟁력을 키워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고 그는 꼬집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31일 서울 소공로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홍구 전 총리와 스트로스칸 총재. [안성식 기자]

 포럼에 참석한 다른 석학들도 스트로스칸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콜린 브래포드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는 재정·금융위기와 정치 리더십의 위기가 겹쳐 나타나는 ‘이중 위기’의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격주의자(maximalist)의 부상에 주목했다. “정치가 분권화되면서 틈새가 커지고, 양극단의 정치적 성향을 대변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정책 입안에 있어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하게 얽히면서 국가 지도자들은 국외보다는 국내 문제 해결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토머스 헤일 옥스퍼드대 교수 역시 “미국 티파티(공화당 내 강경 유권자단체) 등 사례가 그렇고 중국 내 갈등도 같은 흐름”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국내 정치 때문에 주요국들이 국제 무대에서 협력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대의 지앙구오 쉬 부교수는 “중국도 지난해 선출된 새로운 지도자들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제18차 3중전회(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가 곧 열리지만 이렇다 할 정책 방향이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스트로스칸은 세계의 리더십과 협력 부재가 불러올 위기를 ‘조용한 태풍’으로 묘사했다. “태풍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에 들어가면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고음은 커지고 있지만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토머스 헤일 교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조적 한계가 너무 크다. 이 때문에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실버불렛(silver bullet) 전략’ 즉 하나의 정답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 변화가 아닌 장기 개혁으로 방향을 잡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큰 변화의 물결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국제 리더십과 협력을 복원하는 장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토론토대 멍크국제학센터 존 커튼 교수는 “G20 안에서 많은 해결책을 내놨고 속도가 상당히 더디긴 했지만 진전도 시켰다”고 밝혔다. IMF 이자벨 마테오스 라고 아태국장도 “국가 지도자들은 G20 정상회담을 통해 협력을 추구하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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