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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의 전제조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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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물가안정대책의 일환으로서 경제안정법과 공정거래법을 제정한다고 발표했는데 그중 공정거래법안을 우선 법률로 확정시킬 방침으로 있다한다.
공정거래법의 제정론은 66년의 가격파동을 계기로 제기되어 당시에도 법안이 성안되기까지 했으나 업계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된 적이 있었다. 그 뒤 정부는 68년에도 다시 이를 추진하러 했던 일이었으므로 공정거래법 제정은 이번이 세번째 시도라 할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공정거래법을 끈질기게 제정하려는 것은 한마디로 종래 정부가 물가문제를 다룸에 있어 거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오던 세무사찰 등 행정력을 통한 물가억제만을 가지고서는 물가의 고삐를 잡을 수 없어 이에 더하는 법적 규제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할 수 있다.
확실히 일부 독과점 상품 가격은 하방경직성을 가지고 있어 물가 정책 집행에 애로를 형성한다는데 이론의 여지는 없겠으나, 그럴수록 이를 규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몇 차례나 법제정을 서둘렀다가 실패한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의 경제정책 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만 공정거래법을 제정하는 의미가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실정은 지금까지와 같이 순전히 지나치게 행정력이 발동되어 오히려 기업 부실화를 촉진시키는 경우까지도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을 제정하려 한다면 첫째, 정부가 개별기업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관여하는 지금까지와 같은 행정방식을 지양하여 기업의 경쟁 「메커니즘」을 먼저 소생시켜야 할 것이다. 즉 가격 기구의 정상적 작용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일일이 관여하던 종래의 타성을 버리는 동시에, 그대선 독과점 가격의 폐해를 법에 의해서 엄격히 규제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할 것이다.
둘째, 정부의 산업 정책이 자유 경쟁 원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공정거래법을 제정하는 바탕이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을 또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이 말하여 금리·세제, 그리고 금융면에서 오늘날처럼 차등이 심해 가지고서는 자본제 고유의 효율 경쟁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한적 경쟁 관계를 청산시켜 평등한 경쟁관계의 성립을 보장, 경쟁의 소산으로 형성되는 독과점의 폐해만을 규제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세째, 고율 투자와 고도성장 정책의 지속으로 물가 상승이 불가피할 때 어느 정도를 독과점 가격 조작에 기인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 그 한계를 명확히 긋는 것도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 정책이 실효를 발휘하여 안정된 물가 수준을 이루지 못하는 한, 공정거래법을 제정한다 하더라도, 부당 가격을 판정하는 기준이 애매하여 그것은 자칫 감정적인 억제정책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거래위의 완전한 독립성 여부 문제와 정치적 부대 비용 및 가격 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부대 비용은 주로 독과점 기업에서 염출된다는 것이 상식이라 하겠으며, 그 대가로 가격 인상이 허용되는 경우, 순 경제적 척도에서 보면 분명히 부당 가격이 되어 규제 대상이 된다는 것은 구차스런 변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여간해서는 정부가 가격 인상을 공정거래법으로 다스리지는 못할 것도 또한 자명한 이치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거래법을 제정하여 차별 없이 이를 통용하려면 기업 원가에 반영되는 방식으로 정치적 부대 비용이 염출되는 관행이 근본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며, 공정거래위가 이름만의 「공정」을 표시할 뿐, 사실상 관의 일방적 결정에 들러리를 서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요컨대 공정거래법을 제정하기 전에 정부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한 두 가지에 그치지 않으며 현행 방식을 그대로 두고서 공정거래법을 시행하는 것은 오히려 옥상옥격의 번잡만을 더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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