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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영화 검열|완화 건의 계기로 본 논리의 한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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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영화 수출입자 협회는 최근 당국의 영화 검열완화를 골자로 하는 건의서를 문공부장관에게 제출했다. 이와 함께 국산영화 제작업계 일부에서도 국산영화에 대한 검열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 이에 대한 대책을 숙 의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 수출입업자와 제작업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이들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 ①당국의 영화정책이 세계의 영화조류에 역행하고 있으며 ②영화 검열이 완화 내지 일관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에 집중되고 있어 이에 대한 당국의 반응이 극히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검열제도 상의 모순 때문에 우리 나라의 영화 검열은 극히 제한 된 몇몇 영화 당국자들의 취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영화검열에 일관성을 보일 수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이를테면 문공부의 영화과장이 경질되는데 따라 검열에 통과하지 못할 작품이 통과되기도 했고, 전례에 비추어 쉽사리 통과될 작품이 반려되기도 했다.
대체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영화검열은 윤리성과 에로티시즘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란 국시나 국책 따위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그 한계가 분명하지만, 윤리나 에로티시즘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자로 재듯이 한계를 정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줄곧 참음의 대상에 돼왔던 것이다.
윤리와 에로티시즘의 문제에 있어서 에로티시즘의 경우는 부분적인 커트로 상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말썽은 없었지만 전체적인 얘기의 줄거리가 한국적인 윤리에 크게 어긋날 때 상영을 불허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 영화의 윤리문제는 항상 쟁점이었다.
물론 에로티시즘의 경우에도 얼마 전 개봉된『세브리느』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여러 곳을 잘라버렸기 때문에 전후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이럴 바에야 왜 검열 통과를 시켰느냐』 는 영화 관객의 빈축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영화당국자의 취향이 각각 다르더라도 영화에 있어서 에로티시즘의 한계는 뚜렷하다고 봐도 타당할 것이다. 얼마 전 개봉된 박노식 감독의『인간사표를 써라』 의 검열 때는 3명의 액션·스타가 한 여인의 벌거벗은 상체를 마구 주무르는 신 등 여러 신을 커트 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윤리의 한계다. 최근 문공부는 프랑스 영화인『죽도록 사랑해서』와『위약』, 미국 영화인『비설』과『모험 사』, 그리고 중국영화인『귀 문의 독수리』등 5, 6편의 수입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모험 자』『귀 문의 독수리』는 특수 케이스로 논외의 대상이지만 다른 3편은 모두 애정 물로서 윤리와 에로티시즘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수입 불허의 이유가 되고 있다.
수출입자협회가 문공부장관에게 보낸 건의서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는 이들 영화의 수입 불허는, 특히 이들 영화가『영화검열이 일관성만 보였어도 검열을 통과 못 할 이유가 없다』(협회 측 주장)는 점에서 문제점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검열의 일관성」이란 곧「전례」를 의미하는 것이다. 수입업자들은 한가지 예로『죽도록 사랑해서』의 경우를 들었는데, 남자 고교생과 여선생사이의 애정을 다룬 이 영화가 물론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흑인학생들이 여선생을 윤간하는『폭력교실』이나 계모와의 애정을 다룬『페드라』, 유부녀가 대낮에 몸을 파는『세브리느』와 비교할 때 과연 어느 쪽이 더 비윤리적이냐는 것.
물론 업자 측의 주장에도 다소의 무리가 있고 영화 당국도 말못할 난점이 많이 있겠지만, 영화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세계적인 조류가 보다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지금 폐쇄적인 영화정책은 영화의 사양을 더욱 촉진할 따름이란 점에서 영화정책, 특히 검열의 완화는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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