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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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1958년 서울 출생. 제주 거주. 미용실 운영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심사평] '능소화' 담장 너머 꿈틀대는 관능적 시구 탁월

한 해의 곡식을 갈무리할 때다. 곡간이 가득한 집엔 웃음과 인심이 있고, 소출이 넉넉지 못한 집엔 근심이 쌓인다. 가을 시조의 곡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알곡이 충실하다면 밥상이 기름지겠고, 그것들로 씨앗을 삼는다면 내년 농사도 풍년을 기대할 수 있어 더없이 흐뭇하겠다.

 이달의 장원작으로 이명숙의 ‘능소화’를 뽑는다. 지난 여름 넌출넌출 담장을 타고 넘는 능소화를 보면서 상상력의 넝쿨을 따라가며 쓴 시다. 능소화는 임금님과 하룻밤 사랑을 하였지만 끝내 잊힌 채 죽고만 한 궁녀를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가진 꽃이다. 그런 만큼 ‘붉은 흥분 꿈틀대는 관능에 후드득 지는 꽃잎들’같은 감각적인 구절을 잘 살려 시의 맛을 더했다. 다만 ‘돌담 위 난분분한’‘혼외정사’같은 진부하고 직접적인 시어들이 흉터로 남아 있다.

 차상에는 박한규의 ‘개개비’가 뽑혔다. 노동의 텃밭을 떠나지 못하는 한 아픈 넋이 개개비로 떠도는 사연을 담아내었다. 응모한 다섯 작품들 모두 이야기를 엮는 솜씨가 돋보이지만 자칫 서술에 얽매이다 보면 이미지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중복되는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깔끔한 마무리를 짓는다면 훨씬 나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으리라.

 차하는 이병철의‘감나무 영정(影幀)’이다. 모처럼 잘 직조된 단수가 눈길을 끈다. 정형의 가락이 제대로 살아있고 이미지도 명징하다. 그런 만큼 종장 결구를 맺는 솜씨도 좋다. 다만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 차하에 머물렀다. 퇴고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면 훨씬 좋은 시조를 창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정경의 ‘벽골제’, 서해경의 ‘복사기 속을 횡단한 낙타’, 나동광의 ‘열대야’등도 마지막까지 눈길을 잡았다.

심사위원=오승철·이달균(대표집필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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