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기 가면 가창오리 군무 만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1 국내 4대 철새 도래지 금강 하구에서 촬영한 가창오리 군무.

#겨울 철새의 대표주자, 가창오리

다시, 가창오리의 군무가 시작됐다. 저 멀리 시베리아 벌판에서 이륙한 가창오리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 사이 충남 서산 천수만에 도착한다. 그 사이 이름이 세 번 바뀐다. 러시아 바이칼호 인근에선 작은 오리라는 뜻의 ‘바이칼 틸(Baikal Teal)’로 불린다. 북한에선 뺨 무늬가 태극 무늬와 비슷하다고 ‘태극오리’라 한다. 휴전선을 넘으면 비로소 ‘가창오리’가 되는 것이다.

날이 추워지면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하구언으로 남하했다가 한파가 찾아오면 우리나라의 땅끝인 전남 해남에서 겨울을 난다. 11월 천수만의 가창오리가 1월 고천암호의 가창오리라는 얘기다.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다. 낮에 실컷 자고 저녁에야 먹이를 찾아 나선다. 해질녘 떼 지어 비행하는 것은 먹이 활동을 나가기 전에 기지개를 켜는 격이다. 군무를 할 때는 우두머리새가 앞장선다. 일단 우두머리가 속한 무리부터 하늘로 솟아오르면 이어 다른 무리가 차례로 뒤따른다. 먼저 비상한 새들은 공중에서 빙빙 소용돌이치듯 돌며 나머지 무리가 마저 떠오르길 기다린다. 수면 위 새가 모두 날아오르면 하늘은 새들의 천국이다. 가창오리 군무는 짧게는 3분, 길게는 20분까지 이어진다.

사실 가창오리가 수만 단위로 무리짓는 건 몸뚱이가 작아서다. 가창오리는 몸 길이가 고작 49㎝밖에 안 된다. 맹금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창오리는 커다란 군집을 이뤄 날아다닌다.

가창오리 떼가 머리 위로 바짝 지나갈 때면 ‘두두두두’ 탱크 소리가 난다. 깃털에 묻은 물방울이 일제히 떨어져 아래에 있던 사람은 여지없이 물폭탄을 맞는다. 어떤 이들은 이때를 “자연이 주는 오르가슴”이라 표현한다. “뺨이 아리고 손이 곱아도 이 맛에 철새 보러 다닌다”고도 한다.

가창오리는 해가 떨어지기 전엔 날지 않는다. 그러니 군무를 보려면 저녁나절에 찾아가야 한다. 비행시간도 정해져있지 있다. 보통 날이 따뜻하면 전날 먹이를 배불리 먹어 좀 늦게 날고, 추운 날은 일찍 난다.

2 전남 해남군 금호호에서 가창오리 떼가 석양을 배경으로 화려한 군무를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철새 도래지 천수만

천수만 간척지 일대는 자타공인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다. 철새 탐조철이면 전 세계에서 사진작가가 몰려든다. 특히 가창오리에 관한 한 세계적인 명소다. 30여 만 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난 적도 있단다.

서산시에서 친환경농법을 장려해 철새 먹이를 제공하고, 벼를 수확한 논에 물을 채워 철새가 쉬도록 했다. 해서, 가창오리뿐 아니라 해마다 황새?노랑부리저어새 등 세계적인 희귀종이 날아든다. 천수만 철새 관찰 포인트는 해미천 하류 2곳과 간월호 제방 중간에 설치된 탐조대다. 천수만철새기행전위원회에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탐조버스를 운행한다. 041-669-7744. 도비산(352m) 기슭에 자리한 신라 고찰 부석사에서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 주말 탐조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070-8801-3824.

3 군산 금강하구의 가창오리 떼.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창오리 군무 코앞에서 보는 금강하구

금강 하구 남쪽은 가창오리 군무를 100m 안팎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까지 가창오리가 발견된다. 천수만에서 가창오리가 사라지는 시점과 얼추 비슷하다.

특히 군산시 철새조망대에서 동쪽으로 6㎞ 떨어진 ‘나포십자들’ 둑방 부근이 최적지다. 전 세계 수천 마리밖에 없다는 검은머리물떼새, 멸종위기종 검은머리갈매기 등 100여 종을 볼 수 있다. 11월 말 금강습지생태공원 일대에서 탐조 투어, 생태캠프 등을 진행하는 세계철새축제가 열린다. 063-453-7213.

한때 제련소를 중심으로 굴뚝산업이 성행한 서천은 금강하구 철새 보호를 위해 생태도시로 거듭났다.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에서 12월 31일까지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041-956-4002.

#가창오리 종착지, 주남저수지와 고천암호

금강에서 머무르던 가창오리 중 일부는 11월 하순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일부는 해남 고천암호로 날아들어 이듬해 2월경까지 지낸다. 주남저수지에 철새가 찾아든 건 불과 1980년대 중반부터다. 한때 최대 철새 도래지였던 낙동강 하구 을숙도가 개발되면서 터전 잃은 철새들이 50㎞여 떨어진 주남저수지로 날아들었다. 이제 주남저수지는 가창오리?재두루미?큰고니 등 수많은 철새가 모이는 주요 월동지가 됐다. 람사르문화관에서 12월 말부터 매 주말 무료 철새 탐조 교실을 운영한다. 미리 접수해야 한다. 055-225-2798.

가창오리의 최남단 행선지인 땅끝 해남은 최근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천수만 농지의 낙곡이 줄면서 지난겨울 상당수 가창오리가 해남으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서로 인접한 금호호·영암호·고천암호 일대로 철새가 날아드는데, 금호호는 지난겨울 31만8610마리의 철새가 찾아, 겨울철새가 가장 많이 도래한 지역으로 주목받았다. 고천암 일대에는 우리나라 최대 갈대 군락지(1.65㎢)가 있어 갈대밭을 배경으로 한결 아름다운 가창오리 군무를 볼 수 있다. 해남군 문화관광과 061-532-1330.

글=나원정·홍지연 기자
사진=중앙포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