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경호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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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려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한 주말 TV드라마 '무인(武人)시대'에선 요즘 쿠데타에 성공한 군인들 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정중부를 중심으로 한 원로 장군들과 이의방.이고가 이끄는 젊은 장교들의 다툼은 5.16 직후의 육사 5기.8기생 간 대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싸움의 승자는 쇠몽둥이를 들고 좌충우돌하고 있는 이의방(서인석 扮). 이의방은 4년 동안 위세를 떨치다 정중부의 아들(정균)에게 참살되고, 이후 5년간 정중부가 득세한다.

드라마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장수로 나오는 이의민(이덕화 扮)은 실제로 키가 8척(2m로 추정)이나 되는 거한이었다. 맨손으로 의종의 허리를 꺾어 살해한 장본인이다. 정중부를 이은 실권자 경대승이 급사한 후 최충헌이 등장할 때까지 13년간은 이의민의 세상이었다.

쿠데타 당시 이의방과 이고의 직책은 국왕의 친위부대 견룡군(牽龍軍)의 우두머리(행수)였다. 견룡군은 그 명칭으로 보아 국왕이 나들이할 때 신변을 보호하는 경호부대로 보인다(이승한 '고려무인 이야기'.푸른역사). 결국 의종은 경호원들에게 변을 당한 셈이다.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경호실장 차지철(車智澈)의 전횡 때문에 자신마저 시해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하던 차지철은 매주 금요일 경복궁 내 30경비단 연병장에서 부총리.장관.여당 간부.정보부장 등을 불러 모아 거창한 국기 강하식을 개최할 정도로 '간이 배 밖에 나와' 있었다.

3공 이래 청와대 경호실장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시절의 박상범(朴相範)을 빼고는 모두 군 간부 출신이었다. 공채 청와대 경호원이던 朴전실장은 1979년 10.26사건 때 총알을 네발이나 맞고도 살아난 인물이다.

신임 청와대 경호실장에 김세옥(金世鈺)전 경찰청장이 임명돼 화제다. 경찰 출신은 이승만(李承晩)정권 이래 40여년 만이다.

이승만의 경호실장(경무대 서장)이던 곽영주(郭永周)는 '부부통령' '별정직 치안국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권력을 농단한 인물이다. 정치깡패들과 어울려 선거부정을 일삼고 4.19 시위대에 대한 경찰 발포를 지시한 혐의로 61년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고 보면 얼마나 엄정한 자세로 대통령을 경호하느냐가 중요하지 출신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미국만 해도 대통령 경호기관(Secret Service)은 재무부 소속이다.

노재현 국제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