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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전두환 추징금 환수 어떻게 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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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① ‘전두환 압류재산 환수 TF’는 29일 전 전 대통령 장남 재국씨가 자진 납부한 겸재 정선의 산수화(감정가 4000만~2억원 예상) ② 장샤오강의 판화 ‘혈연 시리즈’(1000만~1500만원), ③ 데이미언 허
스트의 실크스크린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0만∼3000만원) 등 미술품 605점 ④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150억원 이상·왼쪽부터)에 대해 주관 매각사 선정 공고를 냈다. [사진 서울중앙지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

 전두환(82)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작업 얘기다. 검찰 TF의 전방위 압박에 전 전 대통령 일가는 지난 9월 23일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자진납부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수사 초기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과 처남 이창석씨가 비밀 가족회의에서 “정말 아버지 대신 갚고 싶어도 돈이 없다”고 했던 데서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하지만 ‘정말 다 낼까’란 의문도 가시지 않는다. 관건은 어떤 재산을, 어떻게 팔아서 1672억원을 맞추느냐다. 수사에 이은 후반전 ‘재산환수’ 작업을 취재했다.

어제 보험·예금·주식 일부 50억 국고로

 “압류 재산이 부동산·미술품·주식 등 다양합니다. 부실 저축은행 자산 매각 경험이 풍부한 여러분의 노하우를 모았으면 합니다.”(김민형 검사)

 “연천 허브빌리지는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어 부동산이라기보다 회사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인수합병(M&A) 경험이 많은 주관 매각사를 선정해 공매를 진행하면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전장택 한국자산관리공사 조세정리부 부장)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 중국 작가 장샤오강의 미술품은 국내 옥션보다 홍콩 소더비를 통해 경매에 부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조양익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2부 부장)

 지난 2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 13층 소회의실에선 ‘전두환 압류재산 환수 TF’(팀장 김형준 부장검사)의 5차 회의가 열렸다. 김 팀장, 서울중앙지검 김현옥·신건호 검사, 김민형(광주지검 파견) 검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예보에서 파견된 직원 등 10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 결과를 토대로 환수팀은 29일 서울중앙지검 인터넷 홈페이지에 장남 전재국(54)씨 소유의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와 미술품 605점에 대한 주관 매각사 선정 공고를 냈다. 삼남 재만(42)씨 소유의 한남동 신원플라자 빌딩(200억원 상당), 딸 효선(51)씨 소유 안양시 관양동 땅(30억원 상당)을 캠코 온비드(www.onbid.co.kr) 시스템을 통해 공매에 부쳤다. 첫 입찰 기일은 11월 25일이다. 조만간 압수한 다이아몬드 20여 점, 루비·사파이어 50여 점, 까르띠에 시계 4개에 대한 공매도 캠코에 의뢰할 예정이다. 김 팀장은 “전 전 대통령 측이 납부키로 한 자산을 국고로 빠짐없이 채워넣는 후반전에 속도가 붙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환수팀은 이날 전 전 대통령 일가의 금융예금 재산 50억원을 국고로 환수했다. 이순자(74) 여사 소유의 연금보험, 재국씨 소유 북플러스 주식, 이희상(68·재만씨 장인)씨 소유 예금 일부 등이다. 지난달 24일 재국씨 소유인 서울 한남동의 유엔빌리지 땅 매각 대금 26억6000만원을 추징금으로 국고 환수한 데 이은 두 번째 가시적 성과다.

부동산, 회계·감정법인·캠코서 합동 공매

 환수팀은 지난 1일엔 전 전 대통령 일가에게서 압수한 미술품 605점 중 유명 작품으로 구성한 일명 ‘전두환 컬렉션’을 공개했다. 고(故) 이대원 화백의 ‘농원’, 천경자 화백의 ‘여인’ 등 국내 작품과 데이미언 허스트의 실크스크린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장샤오강의 판화 ‘혈연 시리즈’ 등 15점이다. 김 팀장은 “미술품 가치만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며 “공매를 앞두고 관심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환수 절차는 재산 종류에 따라 다르게 진행한다. 연희동 사저, 오산 땅 등 부동산은 회계·감정평가 법인에서 가치 평가를 한 뒤 캠코 온비드 시스템을 통해 공매한다. 그림·조각·불상 등 미술품은 국내외 전문가 감정을 거쳐 옥션·소더비 등에서 경매된다. 연금보험·주식 등 금융자산은 추심 절차를 밟는다. 환수한 돈은 검찰청 계좌(신한은행)로 송금한 후 한국은행으로 보내 국고에 귀속한다.

 수의계약은 최대한 자제할 방침이다. 조양익 예보 부장은 “수의계약을 통해 현재 시가로 판 땅의 값이 1년 만에 두 배로 오른다든지 하면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히 제값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의계약 자제 … 세금 문제 국세청과 협의

 세금 문제는 TF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일각에선 ‘환수 재산 규모가 1703억원이라지만 부동산 양도세 30% 등을 떼고 나면 기껏해야 1000억원 정도만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 팀장은 “압류 재산은 환가해서 국고에 귀속시키는 게 먼저고 세금은 다음 문제”라며 “과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추징금 전액을 환수하기 위해 국세청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이 비자금에서 유래한 불법 수익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수사와 결이 달랐다”=환수팀은 지난 5월 말 출범 당시 검사 9명, 국세청·관세청 직원 4명, 수사관 30여 명 등 52명이었다. 김형준 팀장(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은 처음엔 막막했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 측은 16년 동안 “갚을 돈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환수 작업에 참여한 대검 회계분석팀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 측은 ‘언제든 검찰이 재산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지만 회사 돈을 꺼내 쓰거나 한 비리가 없었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일반 기업 수사와는 결이 달랐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세운 원칙은 “안 된다 싶을 땐 직접 가 보자”는 거였다. TF를 집행팀·수사팀으로 나눠 집행팀은 현장을 누비게 했다. 경기도 오산·연천, 서울 한남동 빌라촌, 인사동 고미술 거리…. 전 전 대통령 소유 계좌를 찾기 위해 은행 본점에 가서 20년 전 전표까지 뒤졌다. 관련자를 ‘저인망’으로 훑었다. 전 전 대통령의 20년 전 수행비서부터 차명계좌 명의자인 노숙자까지 316명을 소환 조사했다. 김 팀장은 환수팀 전원에게 응원 메시지를 적은 산문집을 선물하며 독려하기도 했다. 결국 환수팀 출범 110일 만에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손을 들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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