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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독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형사지법판사 39명의 집단사표제출에 이어 서울민사지법판사 44명도 전원 사표를 제출하였다. 서울 민·형사지법부장간사들과 평간사들은 30일 상오에 각급 판사별로 세 차례의 비공식회합을 갖고 사표가 반려되는 경우의 대책을 논의하고 이 기회에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했다 한다. 그들은 집단사표를 내게된 동기가 동료판사를 동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사법부가 외부로부터 받아온 유형무형의 압력을 물리치고 사법권 독립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한다.
평판사 회의에서는 검찰이 그 동안 부당한 간섭으로 사법권의 독립을 해친 실례로서 ①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등의 영상발부에서 선고에 이르는 과정에서 검찰과 견해를 달리 한 법관을 용공분자로 취급, 공공연한 협박을 가하고 신원조사를 하는 등 압력을 가한 사실 ②담당판사에게 판결내용을 미리 알려 달라고 강요한 사실 ③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예금통장 등을 조사한 사실 ④일부판사들의 전화내용을 도청한 사실 ⑤지정사건에 대하여 특정변호사의 수임을 못하게 강요한 사실 등을 일일이 열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명백히 사법권의 독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 판사의 구속영장신청내용도 너무나 세밀하여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처음부터 미행 당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가고, 심지어는 함정수사라는 평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행 설이나 함정 수사 설을 항간의 낭설로만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제 법관전원이 참석한 회의에서의 공식건의문으로 이와 같은 사례들이 낱낱이 지적되었다면 이는 몇몇 판사개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국가기관이 헌법기관인 법원의 존립을 직접 위협하는 일을 계속 저질러옴으로써 국기를 흔드는 소행을 저지르고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판사는 단독으로 재판할 수도 있고 합의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한 개인 개인이 재판부를 형성하는 헌법기관이다. 이들이 담당한 재판에서 무죄 선고했다고 하여 또는 검사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하여 내사하거나 비위사실을 캤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중대한 행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재판의결과를 사전에 알려달라고 하거나 지정변호사외 선임을 방해하는 처사도 국가의 공무를 방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법원판사들이 이번 법관들에 대한 영장신청사건을 계기로 사법권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표제출 등 극한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극히 불행한 일이기는 하나, 우리는 도리어 이를 계기로 해서 하루속히 사법권독립의 현실적 보장이 이루어지게 되기를 절실히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이지 법관들이 무죄판결을 하는 것이나 위헌판결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애국심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이 나라를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육성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 대법원장도 말했듯이 만일 법원이 모든 재판에 있어 행정부나 검찰이 원하는 대로 판결을 해야한다면 사법부의 존재의의란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등한 헌법기관으로서 서로 견제 균형 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원리요, 우리 헌법상으로도 사법권이 우월한 기관이란 것을 정부·검찰·국회는 철저히 인식하여야할 것이다.
사 법사상 최대의 위기를 몰고 오게 한 이번 영장신청사건의 처리에 있어 먼저 그러한 위기의 불씨를 건드린 검찰 측이 무조건 당해 사건을 백지화함으로써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찾아야할 것이다. 신법부가 국회에서 엄숙히 증언했듯이, 만일 검찰에 의한 이번 사건의 형사소추가 진정으로 공익을 대표하여 사법부의 기풍을 기하기 위한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면 그 해결은 이제 사법부자신의 자체규제에 맡김으로써 사건의 불씨를 조속히 해소시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의 현직판사들에 대한 영장신청사건은 이미 국회에서의 토론과정을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 나라 사법부가 안고있는 숱한 문제점들을 전 국민이 이해케 하는 계기를 준 한편, 검찰의 이번과 같은 공소권행사가 국민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위한 입법을 위헌판결 했다고 하여 대법원을 죄려고 하였으나 여론의 압력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우리 나라도 본받아야 할 역사적 교훈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영장파동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굳이 행정부가 사법부를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났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법관이나 검찰이 모두 보다 나은 조국건설을 위한 견해차에서 나온 것이기를 바라면서 하루속히 냉정을 되찾아 원만한 종결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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