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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중공군 개입⑥-맥아더의 오산(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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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맥아더, 안일한 판단만>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맥아더」원수의 명성은 중공군 개입과 그후의 이른바 「12월 총퇴각」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특히 개입여부에 대해서 애초부터 「부」라는 평가를 내려 오산했거니와 이보다 더 결정적인 「미스」는 개입 후에도 사태를 자기 나름대로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급기야는 「트루먼」대통령과의 논쟁을 불러일으켜 「영광의 노병」은 비극적인 「피날레」를 고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10월 중순, 중공군의 예비적 개입 후에 「워싱턴」과 「맥아더」사령부는 개입규모를 점치는데 있어 지나친 낙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북평정권은 만주와 압록강 연안의 발전시설을 보호하기위해 한·만 국경에 따라 일정한 넓이의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해 파병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1월4일에 「맥아더」원수는 참모본부의 문의에 대해 중공군의 전면개입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부정할만한 여러 가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으며 전면개입을 지금 확인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회보 했다.
그러나 「맥아더」원수는 그 이튿날인 11월5일 「유엔」안보리사회에 「유엔」군은 현재 중공군과 교전하고 있다』는 특별보고를 보내고 6일에는 『북평정권은 역사적 기록에 남을 국제적 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원수는 이 성명에서 「유엔」군은 중공군이 은밀히 쳐놓은 함정을 최소의 손해로써 노출시켰다고 말했다.
이것은 「맥아더」원수가 10월 하순의 중공군 1차 기습을 지적한 것 같지만 「유엔」군이 정말 큰 피해를 본 것은 11월 하순의 「종전공세」때 인 것으로 보아, 그의 판단은 옳지 못했다는 젓을 알 수 있다.
한편 「맥아더」원수는 특별성명을 발표한 바로 그날 미 극동 공군사령관 「조지·F·스트레이트메이어」중장에게 B29 90대로 압록강 교량을 폭격하도록 명령했다. 이 소식을 듣고 「워싱턴」측은 몹시 당황했다. 합참본부에서는 폭격효과와 만주 오폭 가능성 등을 검토한 끝에 이 폭격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본국 합참과 심한 갈등>
특히 영국에 대해서는 사전 협의 없이 만주폭격을 수반할지 모를 일체의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었다. 또한 「유엔」에서는 미국요청으로 중공개인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긴급안보 이사회가 소집돼있어 회원국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한·만 국경 폭격 같은 자극적인 행동은 삼가야했다. 「딘·애치슨」국무장관은 「트루먼」대통령에게 폭격연기를 권고하여 동의를 얻었다. 결국 폭격금지령은 실제로 B29가 출격하기 1시간20분전에 동경에 전달됐다.
「워싱턴」의 이 명령은 「맥아더」원수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원수의 회고록(The Reminiscences of Douglas Mac Arthur)에는 이때 그가 합참본부에 보낸 항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나의 이때 놀라움은 도저히 말이나 붓으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막대한 병원과 군수물자가 압록강의 교량을 건너 만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아군은 괴멸의 큰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공군의 파괴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해서 이들 교량을 파괴하고 적의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북한내의 모든 시설을 제압하는 것뿐이다. 이것을 연기하면 연기할수록 미군과 그 밖의 「유엔」군의 값비싼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합참본부에서 과하고있는 제약의 결과 생기는 물리적 및 심리적 재난은 얼마 강조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이 문제를 즉시 대통령에게 회부하여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여기 「맥아더」주장에서 한가지 모순되는 것은 불과 2일전에 합참에 중공군 대거개입에 대해 행정적인 보고를 보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병원과 군수품이 만주에서 대거 들어오고 있다」고 호소한 점이다.
이래서 대통령과 합참본부 요원들은 「맥아더」원수가 「군사적 필요라는 명목으로 자기의 정치적 주장관철을 본국 정부에 강요하고있다고 경계하게 되었고 양자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대통령이나 합참본부는 늘 「맥아더」원수 주장이나 건의를 주저하면서도 동의하는 형편이었다. 이래서 결국 「트루먼」대통령도 한·만 국경으로부터 5 「마일」이내에서의 공군활동금지를 해제하고 신의주와 압록강 교량의 남반부를 폭격하는 것을 허가했다. 「맥아더」의 첫 계획보다는 2일이 늦었지만 11월8일에 B29 90대를 포함한 6백대의 미 공군기가 처음으로 신의주와 압록강 다리를 대대적으로 폭격했다.

<맥아더 월경요구 좌절>
이보다 앞서 압록강 폭격에 대해 「트루먼」대통령으로부터 양보를 얻은 「맥아더」는 11월6일에 다시 합참본부에 두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첫째 「메시지」에서는 중공개입이 전면적 규모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적의 전력을 정확히 판별하기 위해 「유엔」군은 새로운 공세를 취하겠다고 제안했다. 둘째 「메시지」에서는 만주에 기지를 둔 소제 MIG 「제트」기의 활동이 증대하는데 대처하여 국제법의 「계속추적」원칙을 원용해서 월경추적 권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트루먼」대통령과 국방성에서는 처음 이를 승인하려고 했지만 「유엔」의 동맹국들이 확전의 위험이 있다고 일제히 반대했기 때문에 「맥아더」요청은 거부되었다.
11월에 들면서부터 「워싱턴」이나 동경은 다같이 중공의 개입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국무성은 북평정권의 관심은 수풍발전소보호에 있다고 보고 「유엔」감시 하에 압록강연안 20 「마일」에 비무장지대설치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맥아더」원수는 일격을 가하면 군사적 승리를 얻으리라는 자신에서 「종전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10월 하순의 중공군 예비적 개입으로부터 11월24일의 「유엔」군 종전공세까지 한달 동안 「워싱턴」과 동경은 손발이 맞지 않은채 북평정권의 의도나 동기를 정확히 점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점은 「T·R·페런바크」저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서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북평 정권은 북한에 있는 중공군이 의용군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이 한국에 들어와 무엇을 하고있는지, 큰 의문이었다. 여러 가지 징조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는 북괴군이 아직 장악하고 있는 압록강의 남부일대를 제한된 방법으로 돕는다.
둘째는 「유엔」군이 압록강 남쪽에까지 진격해오지 못하도록 겁을 주려는 것이다.
세째는 현재 북한에 들어온 중공군은 그들 주력이 들어오는 것을 엄호하기 위한 병력이다.
「맥아더」사령부의 지휘관이나 한국에 있는 2명의 사령관이나 아무도 중공군대병력이 이미 북한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중공군 안보이자 안도>
11월에 들어 중공군에 전선에 다시 나타나지 않자 미군의 두려움과 의문도 서서히 사라졌다. 더욱이 「맥아더」사령부의 정보장교들은 중공군의 활동이 별게 아니며 「유엔」군의 승리를 막기 위한 단순한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보부장 「찰즈·윌로비」소장과 그의 상관은 중공의 위협이 하나의 정치적인 공갈이라는 그들의 소신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11월 어느 호의 「타임」지도 「한국에서의 중공행동은 「유엔」의 승인을 얻어보려는 정치적인 공갈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한편 「워싱턴」당국자들은 보고가 있었음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전쟁은 장군들 손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지만 국제정치는 더욱 중요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을 「워싱턴」당국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공개입에 관한 여러 가지 정치적 확증을 가졌으면서도 중앙 정보부와 행정부는 「맥아더」견해에 동의했다. 그들은 최소한 「맥아더」자신이 잘 알아서 일을 처리하드록 허용했다. 미제8군은 청천강변에서 강화되었다. 보급은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좋아졌다. 미10군단의 해병사단은 장진호의 서남쪽으로 이동했다. 좌익의 미8군과 우익의 미10군단은 한·만 국경 남방 50 「마일」지점에 있었다.
이제 표면상 남은 문제는 최후의 일격으로 얼마 되지 않는 적지를 뺏는 것이다. 그러면 「유엔」군은 국경이나 혹은 그 몇 「마일」남쪽에 견고한 방어선을 치고 전 한국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맥」사령부는 이상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요일지(11월9, 10, 11일)
※11월9일=▲「맥」사 대변인, 중공군 50개 사단 만주에 집결중이라 언명 ▲남한의 비상계엄해제 ▲한국정부, 중공군 개입에 대해 총 궐기하라는 담화발표 ▲중공군서장수도 「라사」에 입성▲중공대표 9명에 미입국 사증 발급
※11월10일=▲북괴 패잔병, 화천 발전소에 침입 ▲미함 재기 신의주 철교폭격 ▲미·영·불 등 6개국 「유엔」안보리에 중공군즉시 철수안 제출 ▲북평, 9명의 중공대표 「유엔」향발 발표 ▲일본군 전 장교 3천2백명, 추방령 해제
※11월11일=▲북청에 폭탄 l만개 투하 ▲미 공군, 청진·의주 맹폭 ▲중공군, 만포진서 계속 북한으로 이동 ▲학원에 임전태세령·동·하 방학 폐지 ▲부역자처단 단심제로 특별 조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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