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찔리는 게 있나 … 미국 도청 파문에 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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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의 도청 파문이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두 나라 간 (외교) 협력은 절대로 중단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를 찾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7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러시아대사관 등 외국 공관들을 상대로 도청을 해온 사실이 폭로됐을 때만 해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미국을 비판했었다.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도청을 이유로 미국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그 대열에서 빠져 있다”고 전했다. 독일·브라질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유엔 차원의 반(反)도청 결의안에도 21개국이나 참여했지만 러시아는 그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

  러시아 역시 도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CNN은 전직 정보기관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수년 전부터 미국 정부 관리들은 중국과 러시아로 출장 갈 때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놔두고 가도록 지침을 받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그런 만큼 러시아는 미국의 도청이 처음 폭로됐을 때만 해도 맨 앞에서 미국을 비판했지만 파문이 점점 커져 국제사회의 문제로 커지자 자칫 불똥이 튈까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중국도 이 문제에 대해선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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