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와 주변정세의 격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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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공 방문계획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여러모로 크게 파급되어가고 있다. 이미 주변 정세의 격변에 대처할 우리의 새로운 외교자세, 새로운 통일관, 새로운 국내정치·사회관계의 형성 등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우리의 주변정세변화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보다 냉철하게 제반문제를 다뤄야할 것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닉슨」계획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안보문제에 1차적으로 반사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 하겠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미·중공간의 급작스런 접근 「무드」로 말미암아 그에 못지 않게 우리의 경제·사회·문화에 지대한 영향이 미치리라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정부당국이 특히 주목해야 할 상황은 국내정치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경제개발에 의한 근대화 정책이 「닉슨」계획에 따른 주변정세의 변화로 말미암아 어떤 제약을 받을 것이냐 하는 점이라 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개발계획이 외자면 에서나 무역 면에서 미국·일본에 집중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는데, 이러한 미·일 의존관계를 전제로 한 경제개발전략이 여건변동으로 어떤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또 그 변화의 정도와 깊이는 어느 정도일 것이냐를 우리가 충분히 검토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만일 우리가 이러한 현실 인식에 있어 차질을 일으키는 경우, 그 여파는 비단 경제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점을 당국이 철저하게 검토해 주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미국은 대한원조부담을 국군의 파월 시점을 전후해서 묵시적으로 이미 일본에 전가시키려는 강한 희망을 표시, 그 결과 우리 경제의 대일 의존도는 대미 의존도보다도 해마다 더 심화, 초년의 경우, 대미 수입이5억8천만 달러인데 반하여 대일 수입은 8억「달러」를 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일 의존도의 심화가 닉슨 계획의 표면화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임은 명약관화한데, 정부당국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야말로 근본적인 방향설정의 재검토가 있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외신이 전하는바에 따르면, 신 일본제철을 위시한 주요 재벌 급 일상사들은 「닉슨」성명을 계기로 29일부터 열리는 한, 일 협력위 회의에 불참할 뜻을 이미 밝히고있는 것인데, 이것은 결코 개별적인 문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분명히 대한 원조를 일본에 전가시키고 있는 미국정책과는 상충되는 것이라 하겠는바, 결국 이러한 미·일간의 보조불일치가 앞으로 한국경제에 미치게 될 영향은 이를 결코 가벼이 넘겨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성을 지닌 것임을 직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의 개발기금에 대한 대 일 의존성이 닉슨 계획과 이른바 주4원칙의 상승작용으로 불가피하게 큰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 정부는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곤경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할 것이다. 즉 일본자본과 대체할 수 있는 구주자본을 충분히 확보해서 이미 작성된 제3차 계획을 그대로 추진할 것이냐, 아니면 그 주요지표를 축소 될 자본만큼 수정, 조정해서 정세변화에 대처할 것이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문제가 금명간에 이루어져야 할만큼 빨리 우리에게 제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당국이 이 문제를 시급히 검토의 대상에 올려놓고 충분한 대비책을 검토해야 할 것을 권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개발계획은 외환 면에서 많은 애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닉슨」계획으로 파생되는 자본 및 무역 면의 변화가 국내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예상 밖으로 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너무나 여유가 없는 경제정책운영에서 시급히 신축성을 되찾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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