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의 방위력과 극동안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좌등 일본수상은 개각 후 처음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미일안보조약이 재래 무기에 의한 일본방위능력강화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 강조하고 일본은 계속 미국의 핵우산의 보호 밑에 있을 것이며 일본 자신이 핵무기를 소유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레어드」 미 국방장관이 방일 때 지적했듯이 일본자위대의 장비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음을 밝히고, 일본의 자위력 증강은 외국에 위협을 주거나 혹은 군국주의의 비난을 초래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4차 방위계획은 양보다도 질에 치중해서 실시할 것이라 했다. 또 그는 일본이 미 제7함대의 일부역할을 부담하는 문제에 관해 「레어드」장관과 일절 협의한 바 없다고 부언했다.
좌등 수상의 이와 같은 언명은 주목을 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중공간 해빙「무드」의 출현으로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달라지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일본이 국방외교상의 진로를 밝힌 것인데다가 미·일 안보협의에서 구체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무엇인가를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경으로부터의 보도를 종합하여 보면 미국은 「닉슨·독트린」에 따라서 군사력을 감축·후퇴시키는데 있어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가 부하를 종용해 왔는데 일본측이 미국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역할을 맡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①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의 보호 밑에 계속 남는다 ②일본은 자체 경비 조달로 일본 내에 ABM망을 설치한다 ③일본은 육해공을 통해 재래식 무기로 자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④미 제7함대는 「전략적인 전쟁억지 능력」이므로 「전술적인 능력밖에 못 갖고 있는 일본해상자위대에 그 임무의 일부를 대신 시킬 수 없다는 등의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세계 제3의 생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방비지출이 국민 총생산액의 1%에도 미달했던 일본이 이 정도의 방위부담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력의 크기로 보아 책임 부하가 몹시 부족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이 이처럼 군사적 역할 증가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고, 자국방위에 필요한 무력 이상의 것을 갖지 않기를 원하는 까닭은 일본의 재무장 강화가 일·중공의 접근, 화해의 움직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동시에 2차대전 전 일본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던 신생제국의 대일 경계심을 불어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점 우리는 일본이 매우 조심스럽게 미국의 군사력후퇴에 따르는 군사적 역할증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심정을 이해치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본에 대해서 과잉기대를 걸고 있는 미국의 사고방식이 일본주변의 약소국을 자극하고 있다는데 있다. 「레어드」 미 국방장관은 이한 회견에서 『주한 미군은 적어도 72년말까지는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나, 언젠가는 철수해야할 것이 아니냐』 면서 『미국의 태평양상해·공군세력이 충분하므로 지상군이 빠지더라도 큰 탈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장차 한·미·일 3국이 한국의 안보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어드」 장관의 이러한 언명은 미국은 한국을 그 핵우산 보호 밑에 두고 해·공군의 지원을 주되, 조만 간에 지상군 방위임무는 한국에 전담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러한 의도의 배후에는 부원 일본을 끌어들여 한국안보의 일익을 담당케 하겠다는 희망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어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젯점이 있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미국 측의 이러한 생각은 우리 국군이 지상군방위임무를 전담하게될 경우 만일 한국이 적의 선제공격으로 서전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는데도 미국이 절차상 사유를 이유로 들어 참전을 지연 내지 보류할 수도 있는 구실을 만들어줄 가능성도 있거니와, 또 일본군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국토를 방위한다는 것은 한국의 「내셔널리즘」적 논리와 국민감정이 이를 쉽게 용납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레어드」 장관이 시사한 것처럼 미국은 되도록 한국에서 발뺍을 하되, 그 대역은 이를 일본이 맡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표면화된다면 이는 한국인의 지난날의 악몽을 되살려 양국민사이의 우호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