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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양성화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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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생활주변에는 하나의 확립된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법령이나 정부시책에 의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부인되고 있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덮어놓고 막으려고 할 때 그 폐단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과외수업의 양성화』문제가 논의되는 것도 요는 이러한 사회적 폐단을 막기 위한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과외수업을 양성화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 만일 그것을 양성화하기 이전보다 더 못하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얼마 전 문교부가 주최한 공청회를 통해서도 과외수업의 양성화를 찬성하는 측은 13대4의 우위에 있었고 이날 배부된 설문지를 통한 학부모들의 의견은 8대2로 찬성쪽에 기울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당국이나 일반이 흔히 생각하고 있는 정도의 과외공부 양성화가 과연 그 밖의 모든 과외공부를 일소할 수 있겠느냐 하는데 있다할 것이다. 학교교육을 거의 유일한 사회적 상승의 수단처럼 생각하는 기풍이 벌써 수십년 동안 지속돼 내려온 한국사회에서, 특히 해마다 치열의 도를 더해가고 있는 입시경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 경쟁을 이겨내기 위한 과외공부의 풍조는 그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떠한 정부권력으로써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기왕 양성화를 논의할 바에는 멀지않은 장래에 또다시 제2의 양성화 논의가 제기될 수 있는 고식적 방법만은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학교의 정규수업이 끝난 후 1∼2시간 정도의 보완수업으로 끝나게 하고, 따로 특별한 비용을 안받게 하기로 한다는 식의 과외수업 양성화안은 하나마나의 양성화안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모든 학부모들이 무리를 무릅쓰면서 그 자녀들에게 과외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학교에서의 정상수업만 가지고서는 입시경쟁에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따로 이 「그룹」지도나 학관통학이 없이도 자기학교에서의 과외수업만을 가지고 그러한 불안을 일소할 수 있는 방안을 성실하게 물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기왕 과외공부를 양성화시킬 바에는 그 범위나 방법·비용문제 등은 각 학교장이 학부모들과 지역사회유지들과 협의하여 독자적으로 결정케 하되, 희망에 따라서는 일부 외래강사의 초빙까지도 고려하여 우선 학부모들의 불만부터 일소해야 한다고.
또다시 눈감고 아옹하는 식의 과외공부양성화는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일 것이므로 차라리 양성화운운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학부모들로서는 만일 당국이 과외공부 양성화문제를 위에서 언급한. 현실적인 방향에서 처리하기로 했을 경우 자기자녀의 올바른 지적·신체적 성장을 위해서나, 이 나라 교육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모두가 다 당국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승한(중앙일보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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