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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글과 얼 지켜 반세기|한글 학회 창립 50돌 맞아 푸짐한 사업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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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겨레의 글과 얼을 지켜온 「한글학회」가 오는 12월3일로 창립 50돌을 맞는다. 우리 민족의 투쟁사이며 수난사이기도 한 「한글학회」가 걸어온 반세기를 기념하기 위해 「한글학회 50돌 기념 사업회」가 지난 5일 발족됐다. 이날 창립 총회는 명예 회장에 김종필 국무총리를 추대하고 회장에 이은상, 부회장에 정인승·이숙종·박두병·최석채 제씨, 그리고 집행 위원장에 현 한글학회 이사장인 허웅씨를 각각 선출했다.
이 기념 사업회는 한글학회 50년 사를 편찬하고 또 세계 언어학자 대회와 한글 관계 도서 및 기계 전시회, 한글 타자 경기 대회, 한글 회관 건립 등을 사업 계획으로 확정했다.
한글 학회 50년 사는 현재 자료 수집과 원고 청탁을 끝내 사육배판 5백면 정도로 오는 한글날을 전후해서 1만부를 간행, 국내외에 널리 펼 계획이다.
이 50년 사에는 일제 때의 조선어학회사건, 해방후의 한글 파동 등 한글학회가 걸어온 반세기의 발자취와 한글에 관한 연구, 편찬 사업, 계몽 등과 부록으로 학회 연표 등이 실린다.
집행부의 각 분과 기구들이 정해진 후 구체적으로 논의될 세계 언어학자 대회는 12월3일의 창립 기념일을 전후해서 열리게 된다.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인 「촘스키」씨를 비롯, 한영사전을 편찬했던 「새뮤얼·마틴」씨, 그리고 영국의 「로빈즈」씨, 「프랑스」의 「마르피네」씨 등 구미의 언어학자를 초청, 「심포지엄」과 특별 강연회를 가질 계획이다.
또 한글 관계 도서 및 기계 전시회에는 신라 시대의 향찰로부터 이독·구결·훈민정음과 한글맞춤법 등에 관한 도서와 각종 타자기·「텔리타이프」·「컴퓨터」·「모노타이프」·「라이너타이프」등 기계들이 전시된다.
이 기념 사업회는 현재의 소재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의 기념관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1억4천만원을 들일 이 한글 회관에는 연구실·편찬실·자료실·전시실·도서실 등이 마련되게 된다.
국어 국문의 연구와 통일과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한글학회」는 1921년12월3일 임경재·최두선·장지영씨 등 7명이 발기, 「조선어연구회」로 창립됐다.
「한글」지와 사전 편찬을 시작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 표준말 사정 안,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등을 만들어 오늘날 한글의 기초를 닦은 「조선어연구회」는 31년 그 명칭이 「조선어학회」로 바뀌었고 해방 후 49년부터 현재의 「한글학회」로 고쳐졌다.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조선어학회는 한글을 지키고 바로 잡는 사업을 계속 펴왔지만 결국 조선어학회 사건이라는 10·1 사건으로 수난을 받아야만 했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염려하던 일본 경찰은 1942년10월1일 「조선어사전」의 편찬 동기가 조선의 민족 정신을 일깨워 조선 독립을 목적하는 것이라고 트집 잡아 조선어학회 관계자 31명을 검거했던 것이다.
이 사건에 관련됐던 이윤재씨 등은 다음해 옥사했고 최현배·이희승·정인승씨 등은 모두 체형을 받아 8·15 해방과 더불어 3년만에 출옥했다.
해방을 맞은 「한글학회」는 다시 7년간을 끈 한글 파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 한글 파동은 48년 한글날 이승만 전대통령의 한글 전용과 맞춤법의 간소화 지시로부터 비롯됐다.
그러나 곧 이은 6·25 등으로 이 사건은 잠잠해 졌으나 53년 다시 정부가 국무총리령 제8호로 정부 문서에 한글의 간소화 사용을 지시하자 한글학회를 비롯, 교육계 문화계 언론계 등 지식층은 일제히 반대했다. 이 사건은 국회에서도 떠들게 됐고 결국 55년의 대통령 담화로 7년간의 한글 간소화 파동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동안 한글학회가 받은 탄압은 말할 수 없었다. 「한글학회」가 50년 동안 이루어놓은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 우선 56년에 완성한 『큰사전』 전6권의 편찬을 비롯, 『중사전』『소사전』『새 한글사전』등의 발행과 32년부터 지금까지 통권 1백46호를 발행한 『한글』지와 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40년에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등을 만들었다.
또 1백65회를 연 학술 연구 발표회, 한글 강습회, 한글 운동, 한글의 기계화 등과 각종 용어의 정리·심의·제정 등 많은 일을 해왔다.
현재는 64년부터 한국 고금 지명 조사 사업에 착수, 『한국 지명 총람』을 발간중이고 67년부터 『큰 사전』의 보완 사업으로 20만 단어의 원고를 작성 중이며 또 70년부터는 국어조사 연구 사업을 7개 학회와 같이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못다 한 말본·한글 맞춤법·표준말 사정 등과 한글 가로 풀어쓰기·방언조사 등 많은 조사 연구 사업들을 남겨놓고 있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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