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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휩쓰는 「보컬·그룹」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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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 가요계에서 「보컬·그룹」의 위치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출발한지 10년이 넘는 「보컬·그룹」도 갓 「데뷔」한 신인「솔로」의 뒷전에서 빛을 보지 못하게 마련이었고 따라서 수입도 「솔로」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음반업계의 불황에 따라 가수들의 인기경쟁이 「디스크」로부터 방송·무대로 옮겨지면서 「솔로」의 전성은 서서히 퇴조를 보이기 시작하는 반면 「보컬·그룹」들이 급격하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나라 유행음악의 흐름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 나라 유행음악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일본 「리듬」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뽕짝」조 가요며 다른 하나는 구미에서 옮겨온 번역 「팝·송」내지 「팝·송」「스타일」의 가요. 60년대가 전자의 독주시대였다면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후자가 득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전자의 계열에 속하는 「보컬·그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컬·그룹」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후자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60년대 「보컬·그룹」의 활동은 대체로 미군부대 등으로 제한되었었다.
작년 말과 금년 초 이들 지하세력(?)의 표면진출에 크게 공헌한 것은 이미 구미에서는 한물간 「솔·리듬」과 「사이키델릭·사운드」였다. 이른바 「산타나」 (미국의 「보컬·그룹」) 「스타일」로 불려지는 이 「리듬」은 일부 젊은 「팝·송」「팬」들에 의해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으나 다소 비 대중적인 요소 때문에 곧 퇴조를 보였고, 이어 「이지·리스닝」계통의 「뉴·로크」와 「포크·송」이 새로운 「보컬·그룹」의 활로로 등장했다.
이러한 활로를 타고 화려하게 등장한 「보컬·그룹」들은 「히·식스」(6인조), 「키·보이스」(7인조), 「영·사운드」(5인조), 「트리퍼즈」(5인조), 「키·브러더즈」(6인조) 등「뉴·로크」의 기수를 자처하는 「그룹」들과 「라나·에·로스포」, 「트와·에·므와」, 「투·에이스」, 「셰그린」, 「투·코리언즈」 등 「포크」계통의 「듀엣」들이다.
아직까지 미군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컬·그룹」들을 합쳐 국내「보컬·그룹」의 총 수효가 80내지 1백 개에 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의 진출은 아직 미미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미군철수로 인한 미군무대의 불경기로 상당수의 「보컬·그룹」이 일반무대로의 전출을 위한 「워밍·업」을 하고 있어 「보컬·그룹」들의 정상다툼은 더욱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까지「뉴·로크」계열에선 「히·식스」와 「키·보이스」가, 「포크」계열에선 「라나·에·로스포」와 「트와·에·므와」가 각각 2파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 4「그룹」 이 똑같이 「팝·송」「스타일」의 가요를 발판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즉「히·식스」는 『초원의 사랑』, 「키·보이스」는 『해변으로 가요』, 「라나·에·로스포」는 『사랑해』, 「트와·에·므와」는 『약속』을 각각 대대적으로 「히트」시키고 있는 것.
이들 가운데 「히·식스」와 「키·보이스」의 치열한 선두다툼은 가요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얼마 전 어느 경연대회서 「히·식스」가 우승하자 2위의 「키·보이스」는 시상식참가를 거부했는가 하면 「키·보이스」의 후견인 격인 어느「디스크·자키」는 자기가 맡은 「프로」에서 「보컬·그룹」은 뭐니뭐니 해도 「키·보이스」가 최고』라고 말했다가 고정출연자인 「히·식스」의 출연 「보이코트」통고를 받기도 했다.
「보컬·그룹」에 대한 인기가 급속도로 높아감에 따라 이들의 수입도 옛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아져 일류의 경우 한 달에, 1백만 원 이상은 쉽사리 올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디스크」와 방송출연이 고작이었던 과거에 비해 「살롱」·「쇼」무대 등 활동의 폭이 더욱 넓어진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외국 「스타일」을 본뜬 이러한 「보컬·그룹」들의 활발한 활동을 가요계일부에서는 『반드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비록 우리 가요에 전통은 없다해도 외래풍조의 무분별한 모방으로 해서 자주성이 상실될 염려가 있기 때문. 「스타일」을 도입하더라도 우리 나라 자체의 어떤 특성을 창안해 내는 독창성이 아쉽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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