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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부사장「레스턴」논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뉴요크=김영희 특파원】법무장관이 자기가 읽어보지도 못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에 관한 문서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억압한 사실은 비극적인 월남전의 마지막 아이러니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는 못 할 것이다.
창법상의 문제는 법원에 맡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정부 내 의견교환의 정밀을 지키려는 정부의 요구와 과거의 과오를 분석한 역사적 문서를 공개하려는 기도 사이에는 분명히 상극이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서의 보도를 억 합 할 수는 없는 것이다.「뉴요크·타임스」는 법원의 최종 판결을 따르겠지만「맥나마라 문서」의 복사판은 너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를 오랫동안 보도 관제하는데는 너무나 많은 근본적 문제가 있다.
「맥나마라」는 이「드라마」의 주역으로 이 전쟁에 깊숙이 개입해 있고 심지어는 죄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끝판에 가서 그는 외부의 객관적 눈이 이 기록을 봐야하며 무엇이 잘 못 되고 왜 잘못 되었는지를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월남전에 개입했고 어떤 과정으로 미궁에 빠졌는가 하는 근본문제는 장차 이와 비슷한 과오를 피하기 위해서도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맥나마라」뿐이 아니었다.
이런 문서를 아는 사람들은 이 문서의 보도가 국가 안보에 저해되거나 법무장관의 말처럼 『미국 국방 이익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가져왔다고 믿지 않고 있다.
사실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과 이 문서를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안보 논쟁이라는 것이 월남전의 지난 과오와 거짓을 감추기 위한 편법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들은 또 그 억압에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기꺼이 감옥으로 갈 것이다.「미첼」법무장관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무엇이 국가에『돌이킬 수 없는 위해』가 되는가 하는 근본 문제를 제기했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정부의 약점과 속임수를 폭로하는 문서를 보도하는가, 아니면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이 문서를 검열하는 것인가? 이런 법적 철학적 문제에 대해 법원과 주요 인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참전의 내막>
【워싱턴NYT동화특신】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게된 유래와 그 진전 상황을 규명한 공식 문서들이 지금 워싱턴에 조용히 나돌고 있다.
이 문서들은 미국이 어떻게 국론 분열을 가져온 전쟁에 말려들게 되었고 이 같은 중대 결정을 내린 당시의 관리들의 견해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펴보는데 유익한 첫 공식 문서임에는 틀림없다.
이 문서들은 진실이 전쟁의 첫 희생물이며 전쟁이 선량한 사람들을 부패시킨다는 사실을 새삼 입증하고 있다. 사실「닉슨」행정부가 취하고 있는「지그재그」식 월남 철수 정책이 아니라 모호하다고 해도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 때 미국의 월남 개입이 보여주는 흑막과 속임수에 비하면 아주 순진한 편이다. 이 문서 집에서 여러 가지 특별한 사실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 안에서 미국의 전쟁 노력이 지닌 윤리적 바탕에 의문을 제기한 인사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로버트·맥나마라」국방장관「딘·러스크」국무장관「월트·로스토」「번디」형제로부터 하급 관리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윤리 감이 강한 인사들이 월맹 폭격에서 시작하여 「디엠」월남 대통령 거세에 이르는 월남 정책 시안을 실현 가능한가 하는 실용성에만 치중했을 뿐 미국이 전쟁 목적으로 내세운 윤리 목표에 부합되느냐 하는 문제는 전혀 도외시했던 것이다.
그리고「존슨」대통령이 미군의 전투 참여 확대라는 새로운 조치를 명령하고도 의회에 대해서는 이 같은 개입 확대를 숨기고 있는데도 대통령의 측근 보좌관들 가운데 국민에 대한 이 기만 행위에 항의한 사람은 전혀 없었음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
그들의 태도는 대통령에 봉사하기 위해 관직에 있는 것이며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옳든 그르든 이루도록 돕는게 의무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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