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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양육과 가정부 역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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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모자관계를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 곤란하듯 가정부와 어린이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을 말하기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정부에 따라, 어린이에 따라, 그들이 살고있는 가족에 따라, 그들의 관계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정부의 도움이 있음으로써 어머니가 좀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어린이의 양육에 힘쓸 수 있고 가정부의 좋은 성품이 어린이가 섭취할 수 있는 인격의 한 좋은 요소가 될 수 있는가 하면 반면에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문젯점들도 또한 많다.
어머니가(불가피한 경우 가족의 한사람) 아기를 기르며 가정부의 도움을 받을 때는 그리 큰 문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기의 양육을 전적으로 가정부에게 의존적인 경우 문제는 파생된다. 가정부들 중에는 성격이 좋고 아기를 사랑하고 때로는 어머니보다 어린이 양육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있어 아무런 지장 없이 아기를 길러준다.
그러나 남이면서도 일하고 있는 집사람들과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다가는 자기의 현실에 따라 홀연히 그 가정을 영영 떠나버릴 수 있는 것이 가정부의 묘한 대인관계이다. 따라서 늘 뒤따르게 마련인 것은 서로 헤어지는데서 오는 문제이다.
어머니와의 헤어짐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R·스피츠의 조사결과를 적용하여 가정부가 전적으로 대리어머니 노릇을 하였을 경우의 이별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가정부가 대리어머니 노릇을 충실히 하고 그 기간이 길어서 낯을 익히게되면 될수록 그 이후에 오는 갑작스런 이별은 그만큼 큰 충격을 아기에게 준다. 어머니대리역할을 하는 가정부가 출생이후부터 아기를 길러서 낯을 가릴 수 있게 된 후(5∼6개월)의 헤어짐은 얼굴을 알기 이전의 이별보다 큰 영향을 미치나 어린이가 자라서 의지하였던 사람으로부터의 이별이라는 좌절감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에서는 그 충격이 덜하다고 본다.
이런 이별 이후 어머니의 역할이 곧 다른 사람에 의하여 보상되면 문제는 덜 심각하다. 따라서 어머니가 주로 아기를 기를 경우 또는 할머니나 그 밖의 가족이 계속 대리역할을 맡아 아기를 기를 때는 가정부와의 헤어짐이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이 양육이 가정부에게 전적으로 의존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본 환자가운데 생후1년간 여섯 사람의 다른 가정부에 의하여 양육된 어린이가 있었는데 심한 정신적 문제를 나타내고 있었다. 물론 선천적인 요소도 문제이겠지만 이 어린이의 경우 가정부가 전적으로 어머니대리역할을 하였으므로 외부자극에 대한 무방비상태의 어린 나이에서 여섯 번이나 그의 세계가(그 나이에는 양육하는 사람과 대인관계가 국한되어있으므로) 바뀐 셈이었다.
또한 문제되는 것은 가정부의 성격이다. 아기보기를 즐기는지, 싫어하는지, 심지어 가정부의 좌절감이 아기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한번쯤은 생각하여 볼 문제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자라서 마음이 가난하란 법은 없고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 너그러운 마음을 길러낼 수도 있으므로 가정부라는 직업과 성격을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가 아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지나친 짐을 지고 사는 어린 가정부나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 감정적으로 지친 가정부의 경우에서는 신체적 노동 이외에 감정적 도움까지 기대한다면 이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는 뜻에서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감정적인 뒷받침을 주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명심할 때, 가정부는 그 가정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을 수 있고 어린이의 보육은 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이규원(서울대의대교수·소아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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