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퇴 거듭 풍운 10년|김 총리의 정치 역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종필씨는 공화당의 스트롱먼과 야인 사이를 오락가락한 풍운의 정치인.5·16 혁명에서부터 10년 사이의 그의 정치역정은 공화당의 당사였으며 바로 정치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은인 자중하던 군부는….』5·16 새벽 혁명군의 방송 제1성의 원고는 그의 작품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혁명을 주도한 그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멈춘다』는 중앙 정보부를 만들어 혁명의 뒤처리를 했다.
군정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공화당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의 정치가 시작됐다. 김 총리는 공주중학을 거쳐 서울 사대에 진학했으나 2학년 때 육사(8기)에 들어가 중령 때는 이른바 군 지도부의 부정 부패를 규탄한 하극상 사건을 주동하기도 했다.
공화당 창당 파동과 6·3계엄파동으로 인해 그는 이른바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를 두 차례나 했으며 68년5월 3선 개헌과 관련된 착잡한 환경에서 공화당을 탈당하고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나 그림 그리는 일을 소일로 했다.
당을 떠나면서 그는 『목수가 집을 짓는 것은 그 자신이 꼭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69년10월 3선 개헌안이 국민 투표에 붙여졌을 때 백의 종군으로 지지 유세에 참여했고, 70년 12월 당 총재 수석 상임 고문에 임명되면서 2년 반만에 불안정한 복귀를 했으며, 지난 3월 부총재가 됐다.
정치일선에 있든 후선에 있든, 그는 항상 정치적 주목을 받았다. 그가 한때의 실력자였기 때문이라기보다 앞으로의 가능성 때문이었으리라. 박 대통령의 후계 문제의 화제에선 그의 이름이 빠지고서는 얘기가 되지 않았다.
김 총리의 애칭은 JP. 그에겐 독특한 설득력과 성격 배우적인 표정이 있어 정치적인 팬 이 많다.
3선 개헌과 금년의 두 차례 선거에선 전국을 누벼 그의 성가가 재확인 됐다.
넘어졌다가는 일어서고, 물러섰다가 다시 일어선 JP. 선거가 끝나면 다시 화구를 메고 산간을 돌게 될 것이라는 야당 사람들의 말을 받아 『그러고 싶다』고, 하던 그. 이제 화구가 아닌 행정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화구 뿐 아니라 피아노·기타 등 많은 악기를 다루며 독서의 폭도 넓다.
박 대통령의 조카딸인 부인 박형옥 여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그의 취미는 바둑(7급)과 골프(핸디12). <조남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