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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여심」의 회복을…|이규이 <치안국 장비 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국 여성은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다. 얼굴도 몸매도 마음씨도, 그런데 왜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여성 가운데서 염 여인이나 고 여인 같은 여자들은 무고한 어린이를 살해하고 김해에서는 남편을 토막내는 끔찍한 살인을 하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수만 가지의 욕구가 있다.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불만이 생긴다. 사람에 따라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이것을 크게 나누면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사람과 불합리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문예 부흥 당시의 이태리의 화백 「다·빈치」가 욕구 불만을 그림으로 승화시키고 신라의 화랑 처용이 증오를 도피 반응으로 나타낸 것 등은 합리적으로 처리한 예이고 살인이나 파괴로 나타난 것은 불합리하게 처리된 것이다.
염 여인의 경우 어느 여인의 결혼 반대에서 오는 욕구 불만이 자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억제 한계를 넘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어느 여인을 살해하였으면 싶었으나 감당하기 어려워 그 아들로 대체한 것이다. 고 여인의 경우는 또 좀 다르다. 고 여인의 남편이 본처의 아들을 자기 소생 딸보다 더 귀여워 한 것이 원인이다. 그 여자는 본처의 아들을 본처와 자기 딸을 자기와 동일화하였다. 이래서 그것은 즉 정부가 본처를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고 생각해 왔다. 대상은 본처다. 그러나 본처를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아들로 대체한 것이다.
죄 없는 어린이가 어른들의 갈등의 속죄양이 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첩이니 불륜이니 하는 오색 관계가 없도록 하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을지도 모를 일에 대해서는 이성적인 처리에 노력하고, 피해 유인이 될 만한 행동을 삼가고 욕구 불만을 승화시키도록 「퍼스낼리티」의 건전화를 도모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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