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양산·동래>조직과 선전이「시소」|출신지도 양산과 동래
조직 면에서는 여당후보가, 선전 면에서는 야당후보가 악간씩 우세한 이곳의 승부는 결국 종반에서 누가 돈을 많이 쓰느냐에 달러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신민당후보의 숙부가 여객 자동차 회사를 갖고있어 자금 면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관전 자들의 얘기다. 2선 의원에 국회법사위원장을 지낸 공화당의 노재필씨(56)와 일선 언론인으로 지구당을 맡았던 신민당의 신상우씨(34)가 맞붙은 곳.
국회에서도 문제의 발언을 많이 했던 다혈질의 노 후보는 6천명의 공화당원 외에 재향군인회·향토예비군 등의 조직을 활용하고 부락단위의 이른바 단합대회를 통해 지지표를 넓히고있다. 얼마 전에 일부 관리 장으로부터 불신을 받았던 노씨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특히 당내 융화에 힘쓰는 한편 국회에서의 입법활동을 선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후보는 선거를 「발」로 치르는 듯 그 동안 2백90개의 자연부락중 반을 돌았고 유권자의 3분의1쯤과 직접 얘기를 나눴다는 것. 특히 청년층에 파고들고 있으며 지난 두 차례 노 후보에게 도전했던 정현학씨를 선거사무장으로 잡아 구세력을 흡수하는데도 열중.
이 같은 여야의 단독대결이 팽팽한 가운데 노 후보는 동래군 출신이고 신 후보는 양산군 출신이어서 지역 감정이 꽤 작용하고 있다.
신민당은 양산군민들에게 두 번이나 동래 출신을 내보냈으니 이번에는 단결하여 동향 후보를 밀자는 선전을 해서 공화당은 양산 유권자의 지역 감정 없애기 작전을 펴고 있다. <조남조 기자>
◇후보자 ①노재필(공화) ②신상우(신민)
◇67년 의원선거 ▲노재필(공화⑴23,672 ▲정현학(신민)19,702
◇71년 대통령선거 ▲공화35,403 ▲신민12,018

<평택>「군력」과 「조직」맞붙어|패배는 부동표 흡수에
국방장관 발탁으로 7대의원(전국구)을 도중에 그만둔 최영희씨(공화)와 이곳에서 6대 의원을 지냈던 유치송씨(신민)가 재기를 노리는 곳. 최 후보가 화려한 군력과 관련을 지녀왔고 유 후보는 신민당 조직국장으로서 평택에서 오랜 조직의 기반을 굳혀왔다.
신민당 쪽에서는『최씨는 평택사람이 아니므로 내 고장 사람인 유씨를 뽑자』고 지연의식에 호소하고있으나 공화당 측에서는 최 후보가 재군 당시인 58년부터 평택종합고등학교 기재와 의용 소방대기구를 기승한 일이 있고 공천을 받은 후 지금까지 이곳에 5억3천여 만원의 지역개발사업을 유치했다고 내세우고있다.
최 후보는 공화당 기간 조직 외에 사조직으로서 40세미만의 청년층으로 된「평심 친목회(회원3천명)와 각 도민회를 장악하고 있고 수성 최씨 1천2백 가구에 파고들고 있다. 평택에서 오랜 조직의 기반을 갖고있는 공천 경합 자였던 이윤용씨 계의 반발이 약점이다. 공화당은 유세 장에서의 퇴장전술, 부녀자에게 극장 표를 주었다가 회수하는 등 야당에 의한 흑색선전이 난무하고있다고 비난하고있다.
신민당은『평택이 서울의 야당바람을 쉽게 받을 뿐만 아니라 평택읍과 송탄읍의 야당성향 등을 잇점으로 보고 부동표 확보에 힘쓰고있다.
신민당 측은 당원을 6천명에서 이번에 새로 2천명을 더 확보하여 매수방지를 위해 점 조직으로 했다. 특히 이들 중 1백명을 뽑아 참관인 훈련을 시키고있으며 부정방지 민권투위도 조직키로 했다. <김동호 기자>
◇후보자 ①최영희(공화) ②유치송(신민) ③장기천(국민) ④이진휘(대중)
◇67년 의원선거 ▲이윤용(공화) 31,587 ▲유치송(신민)27,472
◇7l년 대통령선거 ▲공화 38,095 ▲신민 36,226

<보성>대규모「개미 작전」…치밀한 「특수운동」
『정권교체가 안되고 대통령은 이미 결정됐으니 지방사업이나 잘해보자, 심부름시키는데는 야당보다 여당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고작·하수도공사, 도로공사, 전기공사나 추진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할 일은 아니다. 또 야당이라고 해서 지방사업을 못한다는 법은 없다』-.
4대 때 국회부의장을 지낸 황성수 후보(공화)는 다분히 복고조의 「이미지」 재생작전에 치우치면서 지방사업추진의 실효성이란 면에서 여당후보가 되는 것이 낫다고 설득한다.
이에 대해 야당 대변인과 국회 예결 위원의 경력을 가진 이중재 후보(신민)는 『야당도 원내 투쟁만 잘하면 여당 못지 않게 지방사업에도 공헌할 수 있다』면서 『이곳 출신 김금석씨가 공화당 전국구(34번)로 들어갔으니 여야 한명씩 내면 사업추진이 더욱 잘될게 아니냐』고 응수한다.
두 사람은「입」으로만 아니라 조직·자금·득표·방식 등에서 대량화하고 다양한 전략으로 대결하고 있다. 이 후보의 조직과 방식이 치밀하고 철저한데 비해 황 후보는 허술하면서 규모가 큰 것이 대조적이다. 공화당 조직은 공천 후유증과 자금 소비방식에서 비롯된 반발로 활력을 잃은 상태, 이를 「커버」하기 위해 황씨는 『개미작전』이란 이름으로 부락단위 7명 가량씩의 사조직을 공 조직의 뿌리에 합류 시켜 나가고 있다.
「특수조직」의 명수로 알려진 이 후보는 조직부장을 비롯한 몇 명의 간부급을 뺏겼으나 1백28개 이책 이하는 한 명의 이탈자도 안 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진용우 기자>
◇67년 의원선거 ▲이중재(신민) 28,730 ▲양달승(공화) 27,766
◇71년 대통령 선거 ▲공화21,454 ▲신민 34,860
◇후보자①황성수(공화) ②이중재(신민) ③박옥재(국민)@@조남조|김동호|진용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