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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제자는 필자>|<제11화> 경성제국대학(9)|강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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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가 적은 데다 민족적인 차별대우에 불만이 많았던 한국학생들은 무슨 일이고 단결했으나 싸움이 일어나면 더욱 단결력을 과시했다.
현석호씨가 옛과에 다닐 때 이른바 「달밤의 소동」이라고 불리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경인간에 「버스」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는데 운전사도 요즘과는 달리 깨끗한 제복을 입고 머리에는 「찌꾸」를 발라넘긴 멋장이였지만 16∼17세 된 여차장은 짧은 「스커트」에 파란 모자를 쓰고 얼굴에 화장까지 한 진짜 신식여자였다.
요즘은 어린애로 취급할지 몰라도 당시에는 15세만 넘으면 충분히 시집갈 나이가 됐다고 보는 시대였으므로 젊은 학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옛과에 다니는 한 한국학생이 버스 안에서 여차장에게 『고것 참 예쁜데』하고 농담을 했는데 운전사와 차장이 합세해서 『경성제대에 다니면 제일이냐, 버릇 좀 고쳐야겠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많은 승객가운데 크게 망신을 당했었다.
이 소문이 옛과에 퍼지자 순식간에 60여명의 한국학생이 모여 당시 운전사와 차장들의 합숙소가 있던 청량리 역전으로 몰려가 몽둥이와 돌멩이로 숙소를 완전히 때려부쉈다.
이때가 마침 8월 보름날이어서 둥근 달이 밝게 비친 가운데 난 사건이므로 「달밤의 소동」이라 불렸다. 결국 주동자 2, 3명이 경찰에 끌려갔다가 훈계방면 되었다.
당시 학생들의 활동무대는 한국인이 인사동·관철동·관수동 등 종로통을 석권한데 비해 일인들은 진고개(현 충무로)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통행금지가 없던 때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스크럼」을 짜고 노래를 부르며 쓸고 다니면 일본경찰은 큰 사고가 없는 한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간혹 서로의 무대를 벗어나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옛과 때 일로 기억나는 것은 짧은「망토」를 입은 우리 학생들이 일인 상가가 줄지어 있던 진고개 중심가를 「스크럼」을 짜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 경찰과 집단충돌 끝에 중부경찰서(당시의 본정서)에 끌려갔었다.
이때 서장이 직접 학생들 앞으로 나와 『나도 여러분과 같은 아들을 키우는 몸이다. 여러분의 오늘의 행동이 단순한 젊음의 발산일 뿐 다른 뜻은 없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한다』고 서두를 꺼내면서 설득, 이해「무드」를 조성하는 바람에 원만히 해결된 일이 있었다.
이 당시 일인들은 한국에서 이른바 문화정책이라는 미명아래 고등정책을 썼기 때문에 표면적인 억압은 별로 없었고, 특히 젊은「엘리트」인 학생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 했다.
당시 문과A조(학부에서 법과로 갈 학생들의 반) 문과B조(학부에서 문과로 갈 학생들의 반)의 대표적인 수재였던 유진오군과 이종수군은 경성일보 사장을 지낸 아부충가라는 낭인에게 초청을 받아 조선「호텔」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고 진수성찬으로 대접받은 일도 있었다.
아부는 학생들의 사상경향여부를 가리지 않고 조금 똑똑하다는 한국인은 수시로 접촉하면서 친일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것은 총독정치의 고등문화정책의 하나로 생각된다.
학생과 직접 충돌을 피하려는 일인경찰도 학생들이 술에 취해 지나친 행동을 하면 경찰서유치장에 수감하기도 하여 많은 학생들이 현재의 신신 백화점 자리인 종로서에 드나들곤 했으나 다음날 아침이면 훈계방면 명목으로 내보내주었다.
어느 학생은 순경에게 미리 50전을 주고 파출소 앞에서 오줌을 누기도 했는데 경범죄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고 버젓이 법을 어기는데는 일인 경찰도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진오군이 강사로 있다가 보전으로 옮기게 된 이유를 그의 「양호기」(고우회보 5월5일자)에 의하면 경성제대에서 승진할 희망이 없어 망설일 때 인촌 김성수씨가 보전을 인수한 직후 1년 후배인 함흥고보 출신 최용달을 취직시키기 위해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던 고하 송진우씨와 인촌을 찾아가 부탁했으나 이들이 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이 자꾸만 자기에게만 와달라고 권유, 남의 취직 부탁하러 갔다가 자신의 일자리를 얻는 격이 됐다 한다.
9회 졸업생에는 법과에 민복기(대법원장) 고재호(변호사·전 대법관) 김재완(전 판사·고인) 김병화(법원행정처장) 이종태(전 전매국장), 문과에 김영기(서울사대부고 교장) 서정덕(영남대 교수) 윤영구(중앙선관위원) 정재각(고려대 대학원장) 한상봉(전 문교부차관·고인), 의과에는 김의식(한일병원장) 신현술(개업·산부인과) 오재걸(개업·소아과) 전성관(인천 도립병원) 정진량(개업·외과) 한심석(서울대총장)씨 등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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