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50)제11화 경성제국대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인 교수들>
경성제대를 세울 때 일본정부는 내용충실을 기한다는 발표와 함께 한국인을 차별대우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인지 일본국내에서도 유명한 교수를 전임교수로 초빙했다.
초대총장이던 복부우지길과 2대 총장이던 송포진차낭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바있지만 내가 졸업하던 해에 취임한 3대 총장 지하결은 대표적인 석학으로 알려진 학자이다.
지하결은 경성제대 설립에 앞서 의학부부속병원의 전신인 총독부의원의 원장직을 맡아오다가 1928년6월 총독부의원이 의학부부속병원으로 변함과 동시에 의학부장을 역임했는데 적리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세계적인 세균학자이다.
4대 총장인 산전삼량은 법철학의 권위자이며 초대 법문학부장이며 5대 총장인 속수황 교수는 심리학계의 태두로 존경받는 분이었다. 특히 법문학부의 첫 부장사무취급자이며 2대 부장을 지낸 안배능성 교수는 일본 교육계의 톱·레벨의 철학자이며 나중에 학습원장을 오래했었다.
의학부의 소림청치랑 교수도 말라리아균을 처음 발견한 세계적인 병균학자였다.
내가 다니던 당시에는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으나 장래를 촉망받는 젊은 조교수로 나중에 유명해진 교수도 많았다.
이 가운데 특히 기억나는 이는 법리학의 미고조웅 교수와 로마법의 선전형이 교수로 미고 교수는 경시청의 학원간섭이 심했던 51∼52년 때 동경제대학생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학원자유수호에 선봉을 서서 경찰의 학원간섭. 학원사찰에 적극 반대운동을 펴서 유명해졌다.
선전 교수는 일본중의원의장직을 맡았던 선전중씨의 동생으로 일본에 돌아가 우진궁에 작신학원을 세워 후진양성에 주력했다.
중의원의원과 각료까지 역임한 선전씨는 중의원선거 때 전 일본의 최고득점자였는데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 교육과정을 가진 작신학원은 현재도 독특한 학풍으로 인재양성에 일익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해방 후 동경에 갔을 때 선전씨가 마중 나와 동창회를 열어주며 반기던 생각이 감회 깊다.
일찌기 한국에 와서 경성고보 선생을 지냈고 15년 동안 경성제대에서 교수직을 맡아온 고교형은 하정 여규형 선생에 사사하여 한국불교사를 연구, 문학박사 학위를 얻었다.
한문학자인 여규형 선생은 당시 우리 나라에서 으뜸가는 석학으로 경성고보에 오래 재직했는데 술을 좋아해서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학교에 나오기가 일쑤였다.
다른 교사가 여선생을 비난하면 고교형은 야단을 치며 적극 보호하고 나섰고 때때로 약주를 사드리며 모르는 것을 묻곤 했다.
체계적으로 이론정리를 해놓지 못했던 여선생에게 단편적으로 얻은 지식을 정리해서 그것으로 고교형이 박사학위를 얻었다는 소문도 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하정에게 물으면 박사 수십명이 날 수 있다는 유행어까지 생겼었다. 경제학 교수인 삼댁녹지조와 령목무웅은 좌경교수로 한국학생들의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경성제대 2회 입학생 1백62명 가운데 한국인학생은 법과 11명·문과 13명·의과 13명 37명에 지나지 않았고 3회 입학생 1백53명 가운데는 법과에 12명·문과에 19명·의과 20명 등 51명의 한국학생이 있었다.
내가 재학 중에 기억나는 이로는 법과에 박용익(전 국회의원) 임문석(변호사·전 국회의원) 하정규씨(전 충비이사), 그리고 공산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이강국·최용달(이상 2회) 등도 있었다. 그밖에 최순문(전 변협회장)과 사경욱(전 중앙선관위장·사광욱씨 형) 정창운(전 검찰총장·고인) 정용신씨(재일·이상 3회) 등이 있었고 문과에는 철학과에 안용백(전 국회의원·2회) 윤태림(연세대 교육대학원장) 이종준(전 국회의원·고인) 서병곤씨(전 휘문중·고교장·이상 3회) 등이, 사학과에 성락서씨(전 충남지사·2회) 김종무씨(전 경기중교장·3회) 등이, 문학과에는 서두수(전 성대총장·서진수씨 백씨) 이희승씨(단국대동양문제연구소장) 이효석(작가·고인·고인·이상 2회) 김태준씨(재북) 이혜구씨(서울대음대학장) 최재서씨(영문학자·고인·이상 3회) 등이 있었다.
의학부에는 이병남(재북·2회) 김석환(중앙병원원장) 한기택(개업·이비인후과) 진병호(서울대부속병원 일반외과과장) 신웅호(개업·산부인과) 이명훈(개업·대구) 나세진(서울의대교수) 강수만씨(개업·내과) 등이 있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