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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기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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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27선거를 통해 야당은 또 한번 새로운 시련을 겪었다. 5·16혁명 후 세 번째인 이번 정권경쟁에서 패배한 야당은 현재의 정치현실에서 발휘할 수 있는「힘의 한계」를 새로이 절감했고 이것은 대여투쟁에 임하는「전열정비」의 중요성을 절실한 과제로 제시했다.
신민당이 40대 후보의 쇄신된「이미지」로, 이른바「정책대결」의 전항적 자세로 어느 선거때보다 활기 있고 과감한 투쟁을 했지만 이것을 득표로 연결시키는데 실패했다.
이 같은 패인은 앞으로 야당이 취해야할 대내외적인 자세, 그리고 총선 후 닥쳐올지 모르는 야당의 재편에서 교훈이 될 것이다.
작년 9월말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뒤 특히 선거기간 중 당권운용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졌던 김대중씨는 이제 그의 당내좌표를 새로 잡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것은 선거기간 중 다소의 불협화음을 일으키기도 했던 당수·후보의 쌍두체제에서 일단 벗어나 당권의 일원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선 대통령선거체제를 국회의원선거체제로 바꾸고 또 눈앞에 닥친 전국구후보의 공천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런 현실문제를 앞에 놓고 김대중씨는 당분간- 적어도 국회의원선거가 끝날 때까지- 웬만큼의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가 후보로 보여준 대여투쟁의「이미지」와 이번 패인에 대한 보완조처는 신민당의 국회의원선거전에 적잖게 기여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선거기간 중 내세웠던「영구집권기도」에 대한 차선의 현실적 대응책은 개헌저지를 위한 국회의석(3분의1선)확보에 있다고 보고있기 때문에 김씨는 전국구든 지역구든 원내진출의 길을 택한 뒤 국회의원 선거전에서 지원유세를 나서는 등 일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원선거가 끝난 뒤의 야당사정은 이런 대여자세와는 달리 새로운 당권포석의 차원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양상으로 발전될 것 같다. 작년 9월 후보지명이전의 유 당수체제 아래서 있었던 주류·비 주류의 정립이 불가피하며 당권학보를 위한 계파간의 경쟁이 차차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헌에 의한 6월 전당대회가 국회의원선거의 뒤처리 때문에 열릴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당권경쟁은 신민당이 선거 후 치러야할 홍역이다. 주류의 고흥문씨와 양일동씨, 그리고 비 주류의 홍익표·정일형씨 등 중진급들의 당권접근 움직임과 함께·김대중·김영삼·이철승씨 등 지난「후보경쟁자」들의 새로운 거리조정 등은 신민당의 당내기류를 어지럽게 할 요인들이다.
이것은 유 당수의 막강한 당권에 언젠가는 직접 도전할 가능성을 비치는 것이며, 비 주류측이 집단지도체제로의 개편을 곧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또한 75년 선거를 내다보는 후보경쟁의 장기포석도 이런 당권경쟁과 관련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총선 뒤에 펼쳐질 신민당의 정치판도는 야당재편 또는 전열정비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중요시되고있다.
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지난 25년 동안 보여온 보수체질을 다소 개선했다. 당 원로 층이 대통령후보 지명에서 스스로 제외되도록 이른바「40기수론」이 관철되고 또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지명경쟁에 승복하여 거당적인 선거체제를 갖추었던 것은 한국 야당사에 길이 남길 뜻깊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의의는 정치현실의 벽에 부딪쳐 효과적인 전열정비로 연결되지 못했다. 김대중후보가 27열 투표를 끝내고 『당수이하 모든 간부들이 애써준 데 대해 감사한다. 그러나 후보 혼자서 유권자-지구당-도지부-중앙당으로 선거열의 불을 거슬러 붙여 와야 했다』고 술회한 점은 바로 한국야당 현실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야당은 민주주의절차에 의한「계파의 조화」와 구심점에 의한「총화의 힘」을 갖추어야 어려운 야당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힘은 어느 정도의 충분한 정치자금의 확보, 전문화된 인적자원 등이 제도적으로 보강돼야하므로 이에 대한 야당의 투쟁이 급선무라고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이번 선거에서 제 삼당으로 지칭되던 국민당이 참패, 그 여맥조차 남기 어렵게 된 점은 63년, 67년 두 차례 선거때의 경향에 맞추어 양당정치의 양상을 더욱 뚜렷이 했다.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제 삼당의 진출은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태에서 63년, 67년 선거때 있었던 야당 통합같은 이해에 의한 야당운동은 이제 더욱 무의미해졌고 이 움직임의 가능성도 더욱 적어지고 있는 것 같다.<윤기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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