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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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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스식 웨딩'(감독 조엘 즈윅)은 지난해 할리우드의 베스트셀러다. 또 스테디셀러다. 5백만달러(60억원)를 들여 2억4천만달러(2천9백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38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들었다. 기록적인 수치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얘기다.

주요 무기는 대조법이다.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녀가 갖은 갈등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는 얼개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그대로다. 그런데도 새롭다. 그릇은 낡았으나 이를 채운 음식은 전에 맛보지 못한 것이다. 조미료로 첨가한 문화 충돌이 입맛을 돋운다.

툴라(니아 바르달로스)는 서른살 노처녀.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뚱보 아가씨다. 가족들의 주된 관심은 그녀의 결혼.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고향 그리스에서 미국에 빈손으로 건너와 먹고 살 만큼 성공한 툴라의 아버지가 사윗감으로 그리스 총각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하지만 툴라는 미국 청교도 집안 출신의 훤칠한 교사 이안(존 코벳)에게 한눈에 반했으니…. 외모에 자신없던 그녀는 이안을 '백마 탄 왕자'로 느낀다. 가족이 운영하는 그리스 식당에서 처음 만난 이안의 미소에 툴라는 온몸이 얼어붙고, 의식마저 정지된다.

압권은 툴라네 식구다. 시대착오적 느낌을 줄 만큼 대가족주의 전통이 남아있는 이 집안 풍경은 그야말로 시장통이다. 특히 툴라의 아버지는 '천연기념물'이다.

모든 것의 뿌리를 그리스 문화에서 찾는 그는 일본옷 기모노의 어원을 그리스어 히모나(겨울)라고 우길 정도다. 이런 가문에서 이안을 달갑게 여길 리 없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결합을 방해하기 위해 각종 배꼽 빠지는 '작전'이 펼쳐진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해프닝에 1시간38분이 후딱 지나간다.

가족.전통이란 장벽을 넘어 사랑을 쟁취해가는 두 연인의 분투가 눈물겨울 정도다. 많은 그리스인은 이 영화를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약혼.결혼식 등 여러 그리스 풍속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고 꼬집었다. 타 민족의 문화를 우스개 대상으로 삼아 과장.왜곡한 제작진의 태도가 언짢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상업적 완성도가 높다. 등장 인물의 개성이 고루 살아 있고, 상황 설정도 재치있다. 가족 모두가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이 일상의 축이었던 옛날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자유는 보장되나 각기 떨어진 섬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을 살짝 건드리고 있다.

제작자로 나선 할리우드 톱스타 톰 행크스가 그리스계 부인 리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이 화제가 됐다. 주연 배우 니아 바르달로스가 시나리오를 썼다. 원제 My Big Fat Greek Wedding.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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