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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6)|태국에 삼륜차 독점 공급…황해연 씨|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방콕=이종호 순회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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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관이나 은행 및 상사 주재원 가족을 제외한 태국의 한국인들은 가정 구성·직업·국적 등이 다양하고 거의 다 수도인 방콕에 몰려 살면서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1943년 일본군 징용으로 끌려 자바 섬에 있다가 종전과 함께 방콕에서 눌러 앉은 황해연씨 (48) 가정은 순수한 한국인이면서 다국적·다국어 가족.
태성 무역을 경영하면서 일본 다이하쓰 대리점을 맡아 태국의 삼륜차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황씨는 53년에 재일 교포 2세인 강군자씨와 결혼, 4남1녀를 두었으나 부인만 한국 국적이고 황씨는 중국, 아이들은 태국으로 돼 있다.
황씨가 중국 국적을 갖게된 것은 종전 직후 정부 수립 전이어서 나라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태국 정부가 『중국인과 비슷하니 중국 국적으로 하라』면서 광동성 출신으로 기재, 여권을 내준 것이 지금까지다.
그 당시 한국인은 무국적으로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지금은 한국 국적을 되찾았지만 일부 교포들은 「코리아」 (태국 말은 까오리) 임을 강조해도 코리아가 미 독립국이라는 점 때문에 중화민국 고려생으로 기재된 여권을 받기도 했다.
황씨는 이처럼 가족의 국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외국 여행을 하려도 불편해서 거의 못하고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쓰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부인이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인과는 일본말을 해야하고 아이들과는 태국 말을 해야하며 대사관 한국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한국말을 조금밖에 모르는 부인에게 익혀주기 위해 한국말을 자주 섞어 써야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
『물론 외국에서 살자면 현지 말이나 영어를 섞어 쓰게 되나 1백% 한국인 가정에서 3개국 말을 해야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황씨는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이 뿐 아니라 중공 승인국이 늘어나는 추세와 관련하여 태국 정부가 중공을 승인할 가능성에 대비, 국적을 한국이든 태국으로든 바꾸어야 하는데 선택에 고심하고 있다.
한국 국적으로 하자면 취득하는 절차상의 문제도 있지만 국적을 되찾을 경우 현재의 사업등기, 세무 관계 서류, 은행 관계 서류 등 관련된 법원 권리장의 국적을 모두 바꾸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국 국적을 얻는 것은 간단하다. 매년 태국 정부가 배정한 한국으로부터 이민 코터가 2백명 (금년엔 50명으로 감축) 인데 실적이 적은데다 「브로커」를 통해 8백 내지 1천불만 주면 단 3일만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민 절차가 돈만 있으면 간단하기 때문에 이중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상당히 있지만 현재 한국인 수는 4백여명에 불과하다. 또한 국적 뿐만 아니라 가정 구성에도 다양하다.
태국에 있는 한국인 중 외국인과 결혼한 케이스는 현재 29가구, 부인이 태국인 인 경우가 12, 남편이 태국인 인 경우가 7, 남편이 미국인 인 경우가 10가구씩이다.
남편이 태국인 인 경우는 유일하게 왕족과 결혼한 박명복씨 (44)를 제외하면 모두 주한태국 군인 시절에 맺어진 것. 「몸·박」 (「몸」은 왕족 여자에 대한 존칭)은 1957년 당시 언거크 태국 대표로 있던 현 남편인 「차오·조티시·데바쿨」씨 (차오는 왕족 남자에 대한 존칭) (64) 와 결혼, 바로 남편 전직과 함께 이주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 49년 한국 은행에 입행 했다가 곧 EAC로 옮겨 미국 유학을 마친 「몸·박」은 54년에 귀국, 당시 WHO에 있던 태국인 소개로 약 1년간 교제 끝에 태국 왕족을 택한 것.
그는 『왕족과 결혼했다면 호화로운 생활을 하곤 있는 것으로 연상하기 쉬우나 현재의 재산은 먹고사는 정도』라고 했다.
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며 1782년의 차쿠리 왕조이래 지금도 입헌 군주제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에 왕족이 수 10만명에 달한다.
남편 「조티시·데바쿨」씨는 현 태국 왕과는 촌수로 할아버지뻘이 되는 근친이지만 외무부국장을 정년 퇴직, 지금은 쉬고 있다.
현재 왕족으로서의 대우는 국왕이 왕족의 표시로 연 4백「바트」(20불)의 은사금을 내리는 정도인데 계보 상으로는 시아버지가 31명의「라마」4세 자녀 중 막내이고 남편은 다음대의 11형제 중 막내. 태국에선 승려를 거쳐야만 지도자나 요직에 앉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은 철저한 불교 신도들이고 시누이는 76세의 노처녀로 왕족 학교 교장을 지내고 있다.
자녀는 1남1녀로 딸은 왕족 학교에, 아들은 「인터내셔널·스쿨」에 재학 중. 「몸·박」은 전 정일권 총리 태국 방문 때 국왕의 통역을 맡아본 적도 있는데 오는 4월 중순 15년만에 고국을 방문하려고 가슴 부풀어 있다. 그러나 태국 군인과 결혼한 한국 여인들은 남편의 봉급이 적어 거의 다 한국 음식점에 나와 일하고 있으며 고국을 찾아간다는 것은 아예 잊고있다.
이 밖에 부인이 태국인 인 경우는 거의 다 20년 이상 된 재내 교포들이고 남편이 미국인인 경우는 임지를 따라 외국을 거쳐 방콕에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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