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사 연구의 분류사 문제|민족 문화 연구소 학술 발표회서|이기백 <서강대 교수·국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대 민족 문화 연구소는 3일 『한국 문화사 대계』의 완간 기념 학술 연구 발표회를 갖는데 주제 발표자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의 분류사 문제』를 요약한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흔히 역사가들은 어떤 역사적 사실이 갖는 시대적·사회적 위치를 밝히는 것을 주안으로 삼는 일이 많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 시대적으로 위와 아래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또 사회적으로 동시대의 여러 다른 사실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점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역사의 연구는 하나의 좁은 구멍을 통해서 가능한 한 넓은 풍경을 내다보려는 「개별적 연구」와 애초부터 높은 언덕에서 모든 풍경을 한눈으로 조감하려는 「개설」의 양면이 있다.
분류사는 이 양자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것이며 역사적 현상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를 대상으로 하되 그것을 어느 짧은 시대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대에 걸친 발전을 개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분류사는 개설에 더 가깝다.
현재 남아 있는 분류사적 숙술로서 최초의 것은 『삼국사기』의 「지」다. 여기에 『고려사』의 지와 『문헌 비고』를 더한 3자는 근대 이전의 체계적 종합적 분류사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가장 내용이 정비되고 양적으로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문헌 비고』라 하겠다.
이러한 종합적인 분류사 저술에는 『해동역사』와 『연려실기술 별집』, 그리고 『지봉류설』『반계수록』 『성호상설』등이 있다.
1개 부문에 한한 분류사에는 『삼국유사』를 먼저 들 수 있다. 「흥법」이하의 제편은 훌륭한 『불교 문화사』다. 이조 특히 후기에 이르면 각종 분류사가 등장한다. 천문·오행 등 관념적 산물도 있지만 대개 현실적 개혁안에까지 연결되는 정열이 담겨져 있다.
서양의 역사 서술법을 본뜬 새로운 체제의 한국사는 현채의 『동국사략』 (1906) 에서부터 나타났으며 최남선의 『조선 역사』(193l) 까지를 독립된 시기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분류사로서는 박은식의 『한국 독립 운동 지혈사』『한국 통사』와 김병조의 『한국 독립 운동 사략』이 있는데 이들은 다분히 개설류에 가까운 성질의 것이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 분류사는 아무래도 이능화와 안곽의 저작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능화는 『조선 불교 통사』를 비롯해 『조선여속고』 『조선해어화사』『조선무속고』 『조선 기독교급 외교사』 『조선도교사』 등의 종교사와 민속사를 저술했다. 또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도 기억돼야 겠다.
한편 안곽은 『조선 문명사』 총서 8권의 계획에서 『조선 정치사』와 『조선 문학사』를 출판했으며 『조선 육해군사』『조선 철학사』를 간단한 글로 발표했다.
안곽의 정치사가 나오던 1923년 일인들의 조선사학회는 『조선사강좌』를 내놓아 일반사 뿐 아니라 대외 관계사, 역사지리, 당쟁사, 제도사, 미술사, 사상사 등 분류사 분야의 연구도 발표했다. 자료 정리에 치우치든가 계몽적 저술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30년을 전후해서 한국사 연구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다. 한국사 연구는 신채호의 『조선사 연구초』, 백남운의 『조선 사회 경제사』 및 진단학회의 『진단학보』를 통해 계몽적 단계를 벗어나 학문적 수준으로 비약하여 오늘에 이른다.
비록 연구 수준은 향상됐으나 분류사는 반드시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도 계몽적 단계를 크게 넘어선 것이 아니다. 정리나 저술에 대한 지나친 의욕이 연구에 앞서 분류사적 저술을 외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비교적 학문적 수준이 높이 평가된 것은 경제사 문제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론이 승하고, 실제와 부합치 않는 역사적 해석이 내려져 왔다. 또 정치사 저술은 적은 반면 어학사·문학사는 관심이 많았다는게 특징이다.
일인 학자들은 한국의 대외 관계사 특히 한일 관계사에 관심을 보였으며 한국의 외교 정책보다는 외적인 힘의 영향을 중시했다. 또 경제사에서도 농업사·수산사 등 각부문의 산업사 편찬이 크게 일어났다. 골동 취미에 의해 미술사도 관심거리가 됐다.
개별적 연구에 역사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속에서 분류사가 성장을 못했으나 근래 「한국문화사대계」의 출현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된 것이다.
이제 한국사의 이해에 대한 분류사의 기여를 위해 ①분류사는 전문 분야 자체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역사 발전의 어떤 법칙을 발견하도록 해야겠다는 점이며 ②분류사도 역사인 이상 그것은 마땅히 역사적 고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