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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의 철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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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차나 고속 버스가 종착점에 가까워지면 안내양은 으례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종착역에 곧 도착합니다』고 안내 말을 한다. 『곧』이 대체로 몇 분인지는 손쉽게 계산된다. 경험만으로도 이 지점에서 저 지점까지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내양의 말이 언제나 『멀지않아』또는 『곧』이라고만 해도 그걸 그렇게 불만스럽게 여기는 승객은 우리 나라에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서양의 기차나 버스의 경우는 다르다. 정확하게 『몇 분 후면 어디에 도착하게 된다』고 밝혀준다.
그만큼 서양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확성에 대한 무감각은 어쩌면 여기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기차가 달린다는 것부터가 신통한 일이다. 무사하게 종착지에까지 이르는 것 자체가 그저 고맙기만 한 일이다. 먼길을 가는데 몇 분 또는 몇 십분의 연착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는 대체로 체념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차 얘기만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불가결한 모든 이기들에 대한 태도도 비슷한 것 같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요새 시내 변두리의 각종 공공시설의 서비스 상황은 날로 엉망이라는 원성이 자자하다.
송수관보수관계로 며칠 몇 시부터 몇 시간동안 단수된다는 공고가 나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참았다. 그러나 공고된 시간이 지나도 물은 나오지 않는다.
참다못해 수도국에 문의해본다. 퉁명스럽게 『알았다』는 대답뿐이다. 그리고서, 몇 시간을 더 기다려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 봤다. 이번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이렇게 물난리를 겪자 있는 판에 전기가 또 나갔다. 왜 단전이냐고 물으니까 『송전선의 고장이니 곧 복구된다』는 대답이다.
『곧』소리를 믿고 전기가 곧 들어오겠거니 기다려본다. 다시 전화로 언제쯤까지 기다리면 되느냐고 물어본다. 『곧 된다』는 대답의 되풀이다. 그 『곧』이란 게 또 몇 시간이 지나도 함흥차사다. 물이 끊기고, 전기가 나가고…. 그런데 이번에는 전화까지 불통이다.
가까운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물어본다. 또 『곧 고쳐 드립니다』이다. 그리고 그 『곧』이 또 하룻밤을 지내도 전화는 여전히 벙어리다.
현대도시에서 수돗물도, 전기불도, 전화도 안 통하는 상태가 장시간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인 상황은 정말 메이·파즈(몰법자). 아무래도 위정자들의 『「곧」의 철학』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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