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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핸드백에 들어있는 게 바로 당신 자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4호 16면

1 김용호 작가의 ‘아가씨가방에들어가신다’. 가방 속 같은 전시실로 들어가면 삼면에 거울 작품이 걸려 있다.

“여자에게 가방은 달팽이집과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달팽이집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다들 안다는 것, 그리고 달팽이가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자의 가방은 가지각색이다.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가방이 있는가 하면 ‘첫눈에 반하게’ 되는 가방도 있고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념비 같은 가방도 있다. 가방 안에는 세상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 장 클로드 카프만의『여자의 가방』 중)

가방 2제: <1>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여자의 가방’전

여자의 가방은 결코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누군가에겐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격정’으로, 또 다른 이에겐 스스로를 기록하는 ‘자서전’으로, 그리고 혹자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금고’로 다가온다. 여자에게 가방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일상을, 아니 인생을 함께하는 파트너나 다름없다.

이런 해석들에 흥미가 느껴진다면 가볼 만한 전시가 있다. 서울 신사동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Bagstage'에서 열리고 있는 'Bag is psychology: 여자의 가방'전이다. 김현철 교수가 여자들의 가방 속을 사회심리학적으로 통찰한 책 『여자의 가방』에 한국적 사색을 더해 텍스트를 선보이고, 김용호와 홍종우 두 명의 작가가 '여자의 가방'이라는 주제로 각각 사진 작업을 벌였다.

이번 전시는 이 박물관을 만든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가 2015년 9월 자체 브랜드 ‘0914’ 론칭을 앞두고 준비한 아트프로젝트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2년간 9회에 걸쳐 이어질 전시에선 핸드백을 수학·과학·음악·미디어 등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할 예정이다. ‘여자의 가방’전은 12월 29일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다.

2 가방과 여인의 이미지가 거울을 통해 중첩되며 제3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자본주의의 상징으로서의 가방
전시가 열리는 박물관 지하 2층. 왼쪽 편에 빨간 가죽이 커튼처럼 걸려 있다. 김용호 작가의 ‘아가씨가방에들어가신다’다. 일부러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이중적 의미를 만든 이유는 뒤늦게 알게 된다. 가죽 꼭대기에 달린 지퍼를 열고 내부로 들어가는 행위가 방(전시장)에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치 누군가의 가방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는 듯하기 때문이다.

일단 정면과 좌우의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나체의 여인 반대편에 가방이 실크 프린트로 찍혀 있다. 얼굴을 가리고 수줍게 유혹하는 여인과 자본주의의 대표 오브제로 등장한 가방. 그 둘 사이에 서 있는 관객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나는 계급적 상징으로서의 가방을 맹목적으로 추앙했는가, 아니면 나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독립적 개체였는가.’ 방에 들어오기 전 커튼에 쓰인 nosce te ipsum(‘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의 라틴어)이 무슨 의미였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거울과 거울이 만들어 내는 중첩된 이미지 사이에서 관객은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낸다. 작가는 이를 두고 “확대 재생산 없이는 생존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면에 있는 거울에는 가방을 눕혀 측면에서 찍은 사진이 찍혀 있다. 마치 여성의 입술 혹은 성기처럼 보이는데 그 역시 성적 욕망과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방이라는 매개체로 엮어낸 작가의 새로운 시도다.

3~6 홍종우 작가의 사진 작품들. 여자의 가방 속에서 찾은 물건들을 모티브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재현했다. 귀고리 한 짝, 네잎 클로버, 플루트에 걸린 열쇠고리가 그 대상들이다.

여자의 가방 속엔 무엇이 있을까
홍종우 작가의 전시는 여자의 가방을 뒤진 결과물이다. 대체 그들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여심을 들춰보려 했다. 작가는 여자 넷을 한 달 넘게 인터뷰했다. 처음엔 가방 속에 별것이 없다던 그들이었지만 만남이 계속될수록 스스로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리고 그것은 가방 속 물건이 아닌, 자신도 잊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이었다. 백혈병 병동에서 만난 환우와 “언젠가 원 없이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자”고 했던 약속,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지만 끝까지 플루트를 가르친 엄마,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 채 살아온 모범생, 오랜 시간 마음을 뒀던 남자의 차가운 거절이 그들 입에서 흘러나왔다.

작가는 그중에서 모티브가 되는 물건들-네 잎 클로버, 플루트에 걸린 열쇠고리, 찢어진 다이어리, 귀고리 한 짝-을 클로즈업 해서 찍은 뒤, 각 사연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재현해 냈다.

실제 가방의 주인들이 사진 속에도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작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각자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여자의 인생을 잠시나마 기록하려 했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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