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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에 깔리는 지하문화재|이조고분 벽화훼손이 던진 문제점-진홍섭<이대 박물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서울근교의 성동구 청담동에서 이조 초의 고분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적이 놀라운 수확이며 그 귀한 연구자료가 그만 훼손돼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는 뒤 소식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결코 소홀히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조상의 산소를 옮기는 종중은 물론 이 지역의 개발담당자인 서울시와 문화재 관리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큰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상목 공사에 앞서 지상물의 처리와 지하 매장물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고 특히 지하 매장물에 대해서 신중을 기해야 함은 상식적인 문제이다. 서울거리 도처에서 진행되고있는 상수도·전화선 등의 공사에서까지도 이러한 배려는 사전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더욱이 대상지가 사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곳이라면 마땅히 사전의 조사와 탐색과 대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어느 나라에서든 토목 공사에 앞서 그러한 배려가 베풀어지는 것을 허다히 보게됨은 지상 및 지하의 유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까닭이다. 비록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인 까닭에 불가피한 파괴라 할지라도 사전에 보존이 필요한 유구에 대하여 기록을 남기고자하는 성의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상이나 지하에 중요한 유구가 예상될 때에는 매우 신중한 사전 검토와 조처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일을 위하여 충분한 조사기간이 필요하다.
포탄이 떨어지는 싸움터에서 진지를 구축하는 일이 아닐진대 그만한 여유는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서는 각종의 수 없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은 국가 재건을 위하여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사전 검토가 없었던 관계로 지하 유구의 파괴·인멸이 가끔 보도되곤 한다.
여러 관계인사들에 의하여 역설돼 오는 바이지만 고대 유구는 한번 파괴되면 기록이 남지 않는 이상 인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설혹 출토유물의 수습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가 감소되며 유구 자체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부산동래의 건축 공사장에서 발견된 지하 유구도 이와 같은 사례에 속하는 것이다.
최근 한강 남쪽 영동지구의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과 지상 지하의 유구에 대한 배려가 있었음을 듣지 못하였다. 개발 대상지를 그 곳에 정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숙고가 있었을 것인데 그와 동시에 사전에 처리할 문제, 즉 지하 매장물의 처리문제도 고려되어서 시공 과정에 반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영동지구에 대하여 특히 문제를 제기함은 이 지구에 포함되는 많은 지역이 백제의 초기문화가 포장된 곳이라는 점에서이다. 광나루에서 말죽거리에 이르는 강안 야산지대 중에서도 특히 성동구의 가락동·석촌동 일대는 백제 초기의 고분이 밀집된 곳이다. 일제 때 일인학자들에 의하여 일부 조사가 이루어 졌으나 그 실태를 파악하기에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1969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가락동의 일부 고분을 발굴하여 주목되는 유구과 유물을 조사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 지대에 대한 계속적인 조사가 요청되었고 공주·부여에 앞서는 백제 문화를 천명하는데 더 없는 중요 지역인 것이다.
백제가 이 지역에 도읍을, 정하고 있던 초기문화는 고구려 문화와 관련하여 예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고 신라문화에의 영향 등을 밝히는 관건이 이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 지구의 개발계획당사자들이 사전에 어느 정도 조사하고 나아가 진행상에 어느 정도 반영하였는지 모르겠다. 만약 중장비에 의하여 이 막중한 지하 유구가 밀려나간다면 무엇으로 그 손실을 보상하겠는가. 영동지구의 개발이 운위되기는 상당히 오래 전 일로 알고 있다. 그동안에 불가피한 파괴에 대비해서 사전 조사를 하려고만 들었다면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였다. 혹 흔한 구실로 예산문제를 들지 모른다. 그러나 수명의 전문가를 시켜서 조사하는데 그다지 큰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다. 영동지구에 대한 사전 조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루어져야 하겠고 또 그것은 성의와 지혜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가능한 일이다. 무지로 인한 파괴는 뜻하지 않는 중대 과오를 범하는 수가 있고, 또 내외의 빈축을 사는 가 많다. 더욱이 제 1급의 매장문화가 포함되어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성의와 무지로 파괴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그 결과는 길이 역사상에 오명을 남기며 지탄을 받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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