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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계의 이상기류 여류의 상위시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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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나라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오랫동안 침체와 불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일부 여류작가들의 장편 소설들이 뭇 출판물을 누르고 몇년 동안 계속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누려왔다. 근년에 이르러 주로 번역물인 전집들이 붐을 이뤄 출판계에 이상 기류를 형성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전집 물에 대한 독서 층을 이질 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여류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전체 독자들의 반응은 꽤 주목할 만한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의 베스트 셀러라는 것은 흔히 밀리언·셀러로 표현되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어 2∼3만 정도가 고작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에 비추어 2∼3만 정도의 실적은 우선 출판사와 작가를 함께 만족시켜주는 것. 보통 작가들의 전작 장편이 대개 2∼3판(한판이 3천부)에서 주춤하는 것과 비교할 때 10판 내외를 기록한 강신재씨의 『숲에는 그대향기』(본사조사 70년 하반기 베스르·셀러)나 정연희씨의 『우녀』(본사조사 70년 상반기 베스트·셀러)따위는 굉장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밖에도 두달에 평균 1편의 신작을 내는 다작 작가 박계경씨와 최의선씨, 그리고 꽤 뜸하게 발표하지만 이석봉·전병순씨와 신진 김봉옥씨 등이 모두 전작 장편 내지 연재물 출간으로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한두 번 지켰으니 말하자면 출판계에서 여류작가는 「보증수표」(?)라고도 할 수 있다.
하기야 「남성작가」들의 소설이 베스트 셀러의 자리에서 전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은 아니다. 물론 랭킹에서는 여류 쪽에만이 뒤져있지만 방영웅씨의 『분예기』가 꽤 오래 베스트 셀러 랭킹을 유지했고 정을병씨의 『받아들인다는 문제』도 다른 작품들과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강석근씨의 『한국인』과 이지욱씨의 『옥합을 깨뜨릴 때』도 많은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여류 작가의 소설에는 뒤진다는게 출판계의 한결같은 얘기며, 또 본사의 베스트 셀러 조사에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소설 독서 층이 이처럼 여류 쪽에 기울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평론가 홍사중씨와 이철범씨는 우리 나라의 독서 층이 주로 젊은이들이며 그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홍씨는 여성독자들이 여류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는 이유는 작품의 소재가 흔히 벅찬 현실 문제 따위는 피하고 여성의 생리문제·애정문제 등을 비교적 아기자기 하면서도 센시티브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미 베스트·셀러에 등장했던 작품들을 남녀작가별로 나눠놓고 보면 홍씨의 이러한 견해는 꽤 타당한 듯 싶다. 젊은 여성의 고뇌를 담담하게 펼쳐 나가는 『숲 속엔 그대향기』나 의식의 투명한 유리벽을 깨고 뛰쳐나온 하나 여인의 정신적 탈각 과정을 그린 『석녀』나 『고죄』-. 이들 작품에서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은 즐겨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철범씨는 이러한 이유 외에도 강신재씨나 정연희씨 등이 신간 연재나 이전의 작품들로써 고정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도 홍씨와 같이 우선 여류 작가들의 소설이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무겁고 어려운 남성 작가들의 소설보다 쉽게 읽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이들 여류 작가의 작품 가운데 물론 문학적 향기가 짙은 작품도 있으나 대부분의 작품은 『약간의 문학적 재능을 앞세운 대중소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베스트·셀러 가운데 몇몇은 그 소설이 지니고 있는 대중성 때문에 『잘 팔리는 소설』이 되었으며 그처럼 대중성 있는 소설을 문학작품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소설이잘 팔리고 있는 현상은 그다지 좋은 현상으로는 불수 없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러나 어쨌든 여류작가들이 1, 2년전부터 출판업계의 소설부문을 석권해온 것은 사실 몇몇 출판업자들이 『한번 잘 팔렸던 여류작가들의 작품이면 이름만 믿고 다음 작품을 계약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당분간 여류사가 붐은 계속될 것 같다. ^^<사진>강신재씨|정연희씨|이석봉씨|전병순씨|박계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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