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국제전 준비하는 권옥연 화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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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창마다 「커튼」이 첩첩이 드리운 아틀리에. 온갖 잡동사니가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는 방 한가운데서 난로가 활활 탄다. 콘크리트 건물의 권옥연씨 화실에는 아직도 으스스한 추위가 머물러 있지만 그러나 주인의 가슴은 올 봄의 「스케줄」로 한껏 부풀어있다.
권 화백은 종전보다 더 짙은 향토색을 구체화하려는 집념으로 작품제작에 임하고 있는데, 그의 명성은 반대로 국제무대를 향해 번져가고 있다.
3, 4, 5월에 걸쳐 있을 해외에서의 발표에 그는 커다란 기대를 걸고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예술잡지 『오리엔테이션』 3월 호에는 권씨의 작품을 특집호로 하는 화보가 10여 「페이지」나 소개되리라는 소식이고, 4월에는 뉴요크의 국제미술협의회에서 그의 작품을 보기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준비도 바쁜 실정이다. 다시 5월에는 영국을 다녀와야 하고.
자신의 작업장을 남에게 거의 보이는 일이 없는 권씨의 아틀리에는 소규모의 민예 박물관이다. 벽에는 산신도·능화판·갓·수·가면·나무바가지·표주박·다식판·등경걸이 등이 더덕더덕 걸려있고, 또 소반·사방탁자·머릿장·백자·토기·석기는 물론 북이며 나막신에 이르는 헙수룩한 민구들이 구석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말하자면 그게 모두 작품의 소재인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화폭에 담는데 아주 열중해 있으며, 그런 물건들이 풍기는 소박한 친근감 속에 묻혀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더욱 한국사람이 돼 가는 느낌이 듭니다. 과거에는 「테마」를 위주로 하여 그리다보니 너무 부담이 컸었지요. 「타이틀」에 눌려서 말입니다. 오히려 프리미티브한 속에 깔려있는 한국적인 얼을 찾아보고 싶고, 그래서 작년부터 퍽 설명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얼맛동안 이 작업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물론 그의 작품은 추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토기 혹은 책동기의 질감을 나타내던 수년전의 작품에 비하여 작금년의 작품에는 훨씬 민화 적인 꾸밈이 있다.
『한국의 원과 선은 서구사람들이 자와 콤파스로 그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훨씬 자연스럽고 자유로운데 한국적인 감각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요즘엔 서구적인 것이 영 이쁘지도 않고 싫증이 나는군요. 기교란 한계가 있을 뿐더러 그것도 더 아름다운 민예품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것을 미처 몰랐었군요』
현대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공통점은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애정이 없는 게 커다란 약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테크닉」을 초월한 애정-곧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의 제작이 중요한 과제라는 지론이다.
그의 작품은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그런 한국적인 열과 얘기를 담아 가지고 해외로 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4월말에 동경에서 만나게 될 국제미술협의회(뉴요크 현대 미술관내)의 현대 미술전문가들에게 보일 작품도 역시 그러한 것들이고, 그를 계기로 하여 미국에 있어서 그의 「팬」이 증가될 것을 기대하고있다.
그의 작품은 이미 뉴요크의 「체이스·맨해턴」은행과 파리의 국립 현대미술관, 그밖에 덴마크 일본 등지에 10수 점 수장돼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보다 더 소개될 꿈에 그는 한껏 부풀어 있다.<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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