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30년만에 독창회 갖는 이유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음악평론가이며 「테너」인 이유선 교수(60)가 이번 봄 해방 이후 처음으로 독창회를 갖는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오랜만에 한번 가다듬어 해보고 싶은 것뿐이 예요.』 오는 5월18일 국립극장에서 가질 독창회를 준비중인 그는 30년만에 서게되는 무대에 기습이 설레이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중견음악인들이 연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못돼요.』 그는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학교에만 들어가고 배운 것을 발표할 기회를 못 가져 안타깝다고 말한다.
부인과 같이 올해 회갑을 맞는 그는 아직도 몸 전체에 젊음이 넘친다. 『음악으로 생활이 즐겁고 또 「스포츠」를 좋아하니까 그런 모양이지요.』 그는 이번 독창회를 계획하고 목소리를 뽑아보니까 아직 쓸만하더라면서 「피아노」앞에 앉는다. 오랜만에 갖는 독창회라 더 뜻깊게 하기 위해 날짜를 바로 35주년 결혼기념일로 잡았다고-.
이번 독창회의 반주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레퍼터리」는 그가 작곡한 『가는 길』(소월시), 『파랑새』(한하운 시) 등 우리가곡과 독일가곡들을 준비하고있다.
평양 출생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교회의 성가대에서 활약했고 18세 때 이미 성가대의 지휘를 맡았다.
연전 상과에 들어간 그는 음악부에서 고 현제명 박사의 지도로 본격적 성악을 공부했다. 이때 조직된 합창단에서 그는 독창을 도맡아 했고, 특히 그가 「퍼스트·테너」였던 4중창단은 서울의 명물로 전국순회공연도 여러 차례 가졌다.
독창회가 드물던 그 시절에 YMCA강당, 경성공회당 등에서 이미 여러 차례 독창회를 가진 그는 35년 도미, 「시카고」의 「아메리컨」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시카고」「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교포를 위한 독창회를 가진 후 귀국, 그는 41년 봄 부민관(현 국회의사당)에서 귀국독창회를 열었다. 그러나 바로 태평양전쟁이 터져 모든 문화 활동은 중단되었고 그는 평양으로 가서 남녀혼성 합창단을 조직, 학생들을 지도했다.
광복 후 그는 그의 친형인 「테너」 고 이인선씨와 같이 국제 오페라사를 창설, 48년1월 시공관(현 국립극장)에서 한국「오페라」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춘희』를 공연했다.
김자경 마금희 황병덕 오현명 송진혁제씨가 출연하는 이 「오페라」에서 그는 합창지휘를 맡았는데 『춘희』는 4월에 「앙코르」공연까지 가졌다. 그는 49년 「시카고」음대 「루돌프·간즈」교수의 「풀·스칼라쉽」으로 유학,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1년만에 6·25사변을 만나 「도오꾜」의 미 극동사령부에서 6년 동안 일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미군 민간인의 합동합창단을 만들어 지휘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56년 귀국한 후 그는 중앙대에서 교편을 잡아 15년간 몸담고있다. 「음협」의 초대 이사장, 「예총」의 초대부회장을 한 그는 『나비부인』『가면무도회』『일·트라바토르』 등 7편의 「오페라」가사를 번역했다. 또 『한국양악80년사』『「오페라」해설서』『음악가일화집』『화성학』 등의 저서를 낸 그는 남달리 「오페라」보급에 많이 힘써 이미 방송을 통해 1백30여편의 「오페라」를 소개했다. 『「오페라」는 성악을 아는 사람이 작곡을 해야 완전한 「오페라」가 돼요』 『파랑새』 등 가곡의 작곡을 해온 그는 욕심이지만 한국적인 「오페라」를 꼭 하나 완성해 놓고싶다고 말한다.
5월의 독창회가 끝나면 부산·대구에서도 독창회를 가질 계획인 그는 32년도의 이화여전 「메이·퀸」인 부인 최신덕 여사(60·YWCA이사)와 슬하에 1남3녀를 두고있다. <이영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