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초상화 외교' … 브루나이 국왕에 첫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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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9일 정상회담을 한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은 220억 달러(약 23조6000억원, 포브스 추정)의 재산을 가진 세계적 갑부다. 1946년에 태어난 그는 21살이던 1967년 브루나이의 술탄(Sultan·이슬람 국가의 정치 지도자)이 됐고, 이듬해 대관식을 통해 정식으로 국왕이 됐다.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이슬람 왕국인 브루나이를 46년간 통치해왔다.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1984년 4월 한국을 찾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이래 박근혜 대통령까지 모두 7명의 한국 대통령을 만났다. 북한과 외교를 통한 체제경쟁을 벌이던 1980년대, 그의 방한에 정부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외교당국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에서의 대북괴(대북한) 외교 우위를 더욱 굳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의 방한을 기념하는 특별우표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브루나이는 1984년 1월 1일 독립했다. 그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역시 브루나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1960~70년대 당대의 유명 화가인 이상원 화백을 통해 외국 정상의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었다. 일종의 ‘초상화 외교’였던 셈이다. 당시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 정부가 줄 수 있는 선물이 마땅치 않았는데 초상화 선물은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초상화 선물의 첫 주인공이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었다.

 브루나이와 한국의 ‘첫’ 인연은 또 있다. 한국 자동차 역사에 기록된 최초로 수출한 국산차의 수입국이 바로 브루나이였다. 1967년 한국-브루나이 간 교역이 시작되면서 당시 버스 제작사였던 ‘하동환자동차’(쌍용자동차의 전신)가 일본에서 수입한 엔진과 변속기에 차체와 내부시설을 자체 디자인해 버스를 만들어 브루나이에 수출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1990년 8월 하사날 볼키아 국왕의 여동생인 텐지란 아낙 이스테리 텐지란 노르하야티 공주가 세계일주를 했는데 그 첫 방문국이 한국이었다. 당시 왕족·친구 등 33명과 경호원 7명 등 40여 명과 함께 입국한 공주는 롯데호텔의 객실 40개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대북정책 등을 지지해온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2000년 11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폐막식 때 의장이던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당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 전 대통령을 축하하며 다른 참가국 정상들의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하사날 볼키아 국왕에게서 선물받은 모형대포는 충북 청원의 청남대 대통령역사문화관에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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