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육아휴직 확대, 만병통치약이 아니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얼마 전 육아 관련 인터넷 카페에 글 하나가 올랐다. 7세 아들을 둔 직장맘의 질문이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위해 1년 육아휴직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31개가 붙은 댓글에서 의견은 만장일치로 ‘그렇다’였다. 보통 댓글이라는 게 찬성과 반대가 어떤 식으로든 공존하기 마련인데, 이 부분에서만큼은 전업주부도 직장맘도 ‘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결론을 냈다.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됐다. 일단 늦게 가고 일찍 오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끝나고 학원을 돌리자니 혼자 셔틀을 태워 보내는 게 안쓰럽고, 방과후 교실을 한다 해도 퇴근 전까지 도우미가 필요한 건 똑같았다. 또 학교마다 다르지만 학부모 총회부터 교실 청소, 학교 주변 신호등 관리, 공개 수업 등 엄마가 참가해야 할 행사가 꽤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내 주변에도 취학 전 자녀를 둔 직장맘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곤 했다. “1학년 1학기에 엄마가 친구 네트워크를 만들어줘야 한다” “챙길 준비물도 많고 아이 숙제가 엄마 숙제”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심란해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초등학교 1학년의 양육이란 할머니와 조선족 ‘이모님’으로 대체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치는 시점이라는 결론을 냈다.

 한데 요즘엔 1학년을 버텨도 끝이 아니란다. 언젠가부터 엄마들 사이에선 ‘초4 결정론’이 회자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부 실력뿐 아니라 저마다의 소질과 적성이 나타나면서 어떤 전략으로 대학을 가야 할지 대충 정해진다는 설이다. 국제중 진학이냐 조기유학이냐 하는 노선 변경 역시 저학년이 지난 그때쯤 결정 시점을 맞는다고 한다. 이 논리라면 초등학교 저학년 내내 또 엄마의 ‘관리’가 필요해진다.

 이번 새누리당과 고용노동부가 합의한 육아휴직 확대안(본지 10월 9일자 6면)을 접하면서 직장맘들이 꽤 반기겠구나 싶었던 건 그래서였다. 만 6세 미취학 아동에 적용됐던 휴직조건을 3년 늘렸고, 2008년 이후 출생이라는 부칙도 없앤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기업이 난색을 표하고 고용보험 재정이 축난다는 우려가 크지만 어쨌든 수혜자들에겐 파격적 혜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쉴 수 있게 되니 안심이 된다면서도 “막상 10살이나 된 아이를 키운다고 일을 쉬는 게 가능하겠냐” “커리어 관리상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예상외의 답을 들으면서 과연 휴직만 시켜주는 게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의 핵심일까 싶었다. 그보다는 휴직해야 할 이유들을 해결해 주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방과후나 돌봄 교실에 학원 못지않은 인력을 배치하고, 준비물을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지급하고, 아이의 진로를 학교와 부모가 함께 고민하는 모범답안이 먼저 제시된다면 OECD 최고 수준의 육아휴직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터다. 더구나 초등학생을 키운다는 건 보육이 아닌 교육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정도(正道)가 아닐까.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