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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사라진 리비아, 알카에다 활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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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군 특수부대는 지난 5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남부 거리에서 알카에다 지도자로 알려진 아부 아나스 알리비를 전격 체포했다.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 테러에 핵심적 역할을 한 혐의가 있는 알리비를 제거하기 위한 기습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에 성공한 리비아가 오히려 알리비와 같은 알카에다 세력이 활보하는 무대가 돼 버렸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라진 자리에 민주정부 대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카다피가 축출된 지 2년이 넘었지만 리비아는 여전히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파·부족 간 첨예한 이해가 얽혀 아직 새 헌법조차 제정되지 않았다. 과도정부는 허약하고 군은 176만㎢(한반도 면적의 8배)에 달하는 방대한 영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특히 사하라사막 지역인 남부 국경 일대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 외국의 이슬람 무장세력을 끌어들이는 새 근거지가 됐다.

 이번에 미국의 기습 작전으로 체포된 알리비 또한 외국에 머물다가 카다피 사후 지난해 리비아에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미 의회 보고서는 알리비를 “리비아의 알카에다 건설자”라고 주장했다.

 알제리·니제르·차드·수단·이집트와 맞붙어 있는 리비아 남부 국경지대는 무기와 지하드(성전) 전사들이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됐다. 이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리비아는 물론 이웃 국가들의 분쟁에도 개입하면서 세력을 날로 넓혀가고 있다.

 크리스토퍼 스티븐슨 미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숨진 지난해 9월 리비아 벵가지 미 총영사관 테러가 대표적 예다. 리비아 내 알카에다 연계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모크타르 벨모크타르가 주도한 인질극 역시 리비아 내 무장단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리비아에서는 미국의 이번 체포 작전에 대한 알카에다의 보복 공격 등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알카에다의 반격을 의식하고 있는 리비아 정부는 “우리 영토에서 우리 시민을 체포하는 것은 납치나 다름없다”며 버락 오바마 미 정부에 설명을 요구했다.

 알리 제이단 총리가 이끄는 리비아 정부는 알카에다의 확장뿐 아니라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동부와 남부 주민들의 무력시위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수도 트리폴리에서 수천 ㎞ 떨어진 동부 지역에서는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시위대가 지중해를 통한 석유 수출을 방해하기 위해 하리가 항구를 점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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