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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정착한 구미 패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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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개월만에 다시 간 파리였는데 어찌나 급템포로 패션 경향이 달라졌는지 놀랐어요. 그전에는 한 2, 3년만에 나가도 그렇게 큰 갭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두달 동안의 파리 여행을 마치고 지난 15일 귀국한 디자이너 노라·노 여사는 「전체적인 패션의 분위기가 밝은 행복감에 차있고, 뚜렷한 흐름이 따로 없이 다양해졌으며, 심플하고 자유로운 스타일의 옷을 모든 여성들이 즐기게 되자 하이·패션이 권위를 잃었다』는 말로 구미 패션의 변화를 정리해준다. 『사람들이 입고있는 디오르 샤넬 로랑 등 일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작년에 만해도 고급 레스토랑 라세즈에 갔었거든요. 이번엔 들렀더니 누구도 요란하게 차려 입고 나타난 숙녀가 없고, 하나둘 있다면 모두 긴장한 외국관광객뿐이었어요.』
저녁모임·사교장 등에 성장하고 나타나는 풍조가 1년 동안에 사라졌으며 바지는 물론 부츠까지가 저녁초대에 자연스런 차림이 되고있다고 노 여사는 전한다. 프린트 저지의 심플한 미디원피스에 부츠를 신고 액세서리로 벨트나 매고 나서면 이제 웬만한 고급 사교모임에서도 손색없는 차림이 된다는 것이다.
하이·패션이 이끌어가던 유행은 이제 자연스럽게 대중 속에 정착했으며 중류이상의 부인들도 맞춤복가게 아닌 기성복가게의 고객이 되고 있다. 블라우스 스커트 스웨터만으로도 훌륭한 차림이 될 만큼 전체적인 거리의 분위기가 자유로와져 있다.
디자이너가 외국여행에서 배우는 것은 하이·패션이 아니라 길가는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분위기를 캐치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저 쏘다니며 구경을 했다고 말하는 노 여사는 『머리를 기르고 히피차림을 한 남자들 모습이 아름답게 받아들여질 만큼 거리가 융통성을 갖고 있다』고 표현한다.
『요즘 한창 야단인 쇼트·팬츠는 10대 소녀들 차림을 아주 예쁘게 하고 있는데 앞자락·뒷자락을 허리까지 튼 미디·코트가 걸을 때마다 팔랑팔랑하며 다리를 드러내 보이죠. 20대는 무릎에서 주름을 잡아 마무린 브루머식의 바지, 30대·40대는 판탈롱을 미디 기장에서 끊어낸 듯한 폭이 넉넉한 바지가 많이 입혀지고 있어요. 스커트는 앞으로 단추를 죽 달아 원하는 기장까지는 단추를 풀고 쇼트·팬츠가 드러나 보이게 하고있는데 봄·여름 시즌엔 우리 나라에서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차례의 외국 여행에서 우리 나라 기성복의 수출전망을 타진해온 노 여사는 이번 여행에서 작년보다는 밝은 전망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패션이 대중화하면서 너무도 싸고 허술한 옷들이 쏟아져 나오고 고급기성복이 부족해진 구라파의 시장사정을 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급기성복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숙련공이 부족한 우리 나라 형편에서는 의상제작이 공정을 세분화해서 분담하도록 하는 기술자 교육이 앞서야 인건비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얘기한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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