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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 요금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택시 인심이 후한 나라는 많지 않다. 어느 나라든 불쾌한 감정은 조금이나마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 시의 택시는 관록 제이다. 동일 블록 안에서는 무조건 50센트이다. 가령 서울 남대문로가 한 블록이라면 이곳을 아무리 빙빙 돌아도 50센트면 된다. 그러나 바로 눈앞의 네거리를 건너 다른 블록으로 가게 되면 두 블록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불과 5백m인 경우도 1달러를 무는 것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 같은 도시에선 흥정을 잘해야한다. 승객은 택시에 오르기 전에 행선지를 대고 요금을 묻는다. 대개는2, 3할은 깎을 수 있다. 그러나 반값으로도 OK를 하는 운전사가 있다. 요령이 문제다.
아랍공 수도 카이로의 택시는 미터가 아라비아 숫자로 나오지 않는다. 아랍의 상형문자로 적혀있다. 그 문자를 알지 못하면 요금을 읽을 수가 없다. 악덕 운전사에게는 호기가 아닐 수 없다.
런던의 택시 는 이제야 관광객들에게 변하게 되었다. 중전엔 팁을 계산하려면 고도의 암산력이 필요했다. 12 펜스가 1쉴링, 20쉴링이 이1파운드 하는 복잡한 화폐단위를 가지고 15%의 팁을 알아내자면 산술 아닌 마술을 해야했다. 그러나 운전사들은 대부분 40대 아니면 50대여서 안심이 된다. 터무니없이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서 베를린의 택시들은 주로 벤츠. 여기의 요금은 『거리·플러스시간』제이다. 그 탓인지 모든 택시들은 허겁지겁하지 않는다. 유유히 미끄러지듯 달린다. 신호대기도 그리 애를 태울 것 없다. 그러나 트래픽·잼에라도 걸리면 시계의 초침소리는 그대로 돈의 소리인 것이다. 재깍 재깍 돈이 오른다.
서울의 택시업자들은 요즘 『거리 플러스 시간』이라는 병산제 요금을 당국에 건의했다.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하다. 아침저녁으로 러쉬가 대단할 때면 서소문에서 불과 6, 7백m 떨어진 반도호텔을 가려해도 20분이 걸린다. 승객편에서도 시간낭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택시 운전사에게도 더러는 미안하다.
그러나 교통혼잡의 고통을 일방적으로 선의의 승객에게서만 보상받으려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다. 병산제 이후, 혼란이 없은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원거리를 부지하 세월로 기어가는 택시는 어떻게 규제할 수 있겠는가.
결국 합승·불친절·불결·악덕요금에 또 하나의 불평과 시비라는 고통을 플러스하는 결과밖엔 안될 것이다. 문제는 시간에 있지 않고 공덕심부재와 무계획한 교통행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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