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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제6화>창군 전후(8)|이경석(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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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군사 영어 학교(하)>
이형근 채병덕 유재흥 장석륜 정일권 양국진 등 6명은(군번 순) 군사 영어 학교에 입교하지 않고 정위(대위)로 맨 처음 임관됐다. 경비대 창설의 중대장 요원으로 특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군번 서열에 말썽이 생겼다. 일본군 소좌였던 고 채병덕은 같은 일본군 대위였던 이형근이 1번이고 자기가 2번이 된데 대해 큰불만을 품었다.
군정청에서 경비대 창설 업무를 담당했던 임선하 부위(중위)가 어느 날 태릉 경비대에 갔다가 채병덕으로부터 멱살을 잡혔다.
『계급으로 봐도 내가 장관이고 일본 육사에서도 내가 선배였는데 어떻게 이형근이 1번이고 내가 2번이란 말인가.』 당시 1대대 A중대장이던 채 정위는 임 부위를 잘 만났다는 듯이 다짜고짜 대들었다.
『군번은 접수 번호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의 대 선배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들어올 텐데 그때마다 군번을 바꿀 수야 없잖습니까.』임 부위는 침착하게 설명했으나 채병덕은 『군번이 무슨 선착순이란 말인가』고 반박하면서 펄쩍 뛰었다.
군번이 정해진 경위는 이러했다.
군사국의 부관 보좌관이던 임선하 부위는 톰슨 중령이 접수했던 특채 장교 이력서를 넘겨받으면서 접수번호대로 군번을 부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임 부위는 접수 순에 따라 「10001」부터 숫자를 적어 나갔을 뿐이었다. 이때 이형근의 접수가 빨랐던 것은 그가 군정청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특채 후보를 천거한 이응준 군정청 고문이 그의 사위인 이형근에게 군번을 맨 앞으로 정해준 것이 아닌 가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형근이 이응준 고문의 딸과 결혼하기 전이었다.,
경비대의 창설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기간 요원이 달렸다. 이 때문에 군사 영어 학교는 장교를 계속해서 배출했고 수요에 충당하지 못할 때에는 또 특채했다. 군번 39인 유흥수(예비역 소장·대양 어업 사장)는 경비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다가 영어 학교 출신으로 임관했다.
유흥수는 학병 출신으로 일본군 소위였었다. 그런데 유 소위는 처음 영어 학교의 입교 권유를 물리치고 2등 병으로 신병에 들어갔었다. 그는 태릉 근무 중대에서 복무 중 남이 싫어하는 사역을 도맡아하고 행정 능력도 뛰어나 모범 사병으로 꼽혔다. 간부들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서 임관, 바로 그가 속했던 부대의 소대장으로 뛰어 올랐던 것이다.
백선엽과 고 김백일(예비역 중장)도 경비대 창설 요원으로 특채된(모두 정위) 사람들이다. 영어 학교의 부교장 격이던 원용덕도 도중에 만군 때의 계급보다 하나 낮은 참령(소령)으로 임관했다. 군번은 41번.
그가 임관한 것은 남조선 국방 경비대 총사령관으로 취임하기 위해서였다.
원용덕이 태릉의 경비대 사령부로 발령이 남에 따라 군사 영어 학교로 2월27일 태릉으로 옮겨졌다. 사실은 군사 영어 학교가 해산된 뒤 군사국 고문이였던 이응준이 군번 1백10, 정령(대령)으로 임관했지만 영어 학교는 그를 마지막 졸업자로 해주었다. 군사 영어 학교는 4월말 문을 닫을 때까지 약 5개월 동안에 1백10명을 임관시켰는데 뒤에 처진 사람들은 경비대 사관 학교 1기생으로 편입되었다.
일본군의 원로가 참여하지 않아 이 학교에 부자간은 없었으나 백선엽·백인엽(예비역 중장·선인 학원 이사장)과 원태섭(예비역 준장) 원기섭(예비역 대령)등 두 쌍의 형제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동생 백인엽(군번 23) 이 백선엽(군번 54)보다, 원기섭(군번 26)이 형 원태섭(군번 27)보다 군번이 빠르다.
영어 학교 출신 중 아직 살아 남은 사람은 75명. 모두가 예비역이며 이중 8명을 뺀 67명이 장성이다. 이들은 지난 66년부터「창군 동우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생존한 75명의 영어 학교 출신 중에 예비역 대장은 이형근(1번), 정일권(5번), 장창국(13번·전 브라질 대사), 민기식(18번), 김계원(35번·주중 대사), 백선엽(54번), 김용배(77번),등 7명이며 중장은 유재흥(3번), 양국진(6번), 최경록(11번·멕시코 대사), 강문봉(17번·스웨덴 대사), 박병권(20번·대한 중석 사장), 백인엽(23번), 김종갑(30번·전 국회의원), 함병선(38번·해외 개발 공사 사장), 정내혁(40번), 김형일(45번), 김익열(47번·양회협회 이사장), 최영희(51번·전 국방장관), 이한림(56번), 최석(75번·국가 안보 회의 자문 위원), 김상복(76번·청와대 수석 정무 비서관), 장도영(80번·재미), 민병권(86번·국회의원), 김일환(93번·한전 사장), 최창언(95번·충비 부사장), 송요찬(96번·인천 제철 사장),강영훈(101번·재미), 박경원(106번·내무장관), 이응준(110번), 등 23명이다.
최주종(10번), 임선하(19번), 박기병(21번), 박동균(32번), 유해준(36번), 이성가(37번), 유흥수(39번), 최홍희(44번), 정진환(57번·전기 협회 이사), 신상철(58번·예비역 공군 소장), 오덕준(59번·대동 공업 회장), 백선진(63번·종합 기술 개발 공사장), 백남권(69번·인천 제철 감사), 김완용(71번·공증인), 김형휘(74번), 이후락(79번·중앙 정보 부장), 이상철(81번·진해 화학 감사), 김웅수(100번·재미), 김종문(104번), 박현수(105번·염업 공사 사장), 신학진(107번) 등 21명은 예비역 소장이며 준장은 이춘경(12번·대화 공업 사장), 안광수(24번·외무부 영사 국장) 등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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