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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는 우연의 결과인가.|다윈 이래의 혁명…불 모노교수 이론<장덕상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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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의문은 유사이래 인류에게 던져진 가장 큰 명제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만인에게 만족할 만한 답변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장·폴·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인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인간의 근본적인 숙제를 해결해 보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아직도 지구상의 대부분의 인간은 깊은 회의 속에 파묻혀 있다.
1965년 생리학 및 의학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은 파리 대학교수이며 파스퇴르 연구소 세포생화학 과장인 자크·모노 교수는 최근『우연성과 필연성』이란 저서를 통해 생물학적인 면에서 인간의 기원을 규명하고 이를 사회학적 철학적 분야에 적용, 20세기 후반의 인간의 방향제시를 다루고 있다. 4개월 째 계속 베스트 셀러의 앞장을 달리고 있는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이래 가장 큰 혁신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한편 기독교계와 마르크스주의자로부터 양면 공세에 부닥치고 있다.
모노 교수의 학설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이론은 텔레오노미(teleonmic)와 엥바리앙스(invariance), 텔레오노미란 말은 희랍어의 teleos(목적)와 nomos(법)이란 단어의 합성어이다.
엥바리앙스는 불변성을 뜻한다. 모노교수에 의하면 첫째 그 하나하나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생물의 조직과 구별되는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텔레오노미란 말로 표현되는데 다시 말하면 생물의 법칙은 한 목적을 향하게 결정되어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성은 생물은 모두가 타자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창조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개개의 생물은 자기의 조직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옴이 없이 꼭 같은 정보를 자기의 조직에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 고유성을 엥바리앙스라고 부른다.
텔레오노미와 엥바리앙스는 각기 그들의 화학적 역할이 다른데 텔레오노미(목적성)는 단백질의 사명이며 불변성(엥바리앙스)은 핵산에서 발생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물의 두 가지 특성 중 어느 것이 우세한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철학체계와 종교적 이론은 목적성이 불변성을 누른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진화는 목적성의 원칙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주장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모노 교수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오히려 불만성이 목적성을 제압한다. 다시 말하면 목적이 먼저 설정된 것이 아니다. 생물의 동일성의 창조력(엥바리앙스)이 우세한 것이다.
그러면 생물은 어떻게 진화의 과정을 밟는가? 그에 대한 모노 교수의 답변은 생물의 진화가 재창조 과정에서의 오류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생물의 근본요소인 세포는 자기와 꼭 같은 또 하나의 세포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몽상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모세포와 자 세포 사이엔 오류에 의해 경미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나 생물의 특성인 불변성에 의해 이렇게 오류 때문에 발생한 상위성은 근대로 유지된다. 이렇게 해서 자 세포가 또 하나의 세포를 만들 때는 꼭 같은 세포를 만들게 된다(물론 또 하나의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물은 물론 변화하는 것이다. 전술한대로 불변성의 원인은 각 세포핵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핵산(DNA)의 작용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세포의 분자조직 DNA가 그 세포의 특성을 결정 짓는다. 다시 말하면 DNA의 분자조직이 변하면 세포가 달라진다.
그런데 DNA의 특성은 보수적이라 변화를 억제한다. 따라서 세포의 변화는 필요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세포의 변화는 어떤 계획이나 법칙에 따라 발생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고 또는 오류, 즉 우연의 귀결인 것이다.
결국 DNA와 단백질의 결합으로 신비스럽게 생기는 생명은 아무도 원하지 않은 우연의 결과인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속의 수심 만 종의 생물은 모두 우연의 결실이다. 꼭 같은 틀로 찍어내는 그릇 등 어떤 것은 잘못되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빛을 발휘하는 것처럼 인간은 거의 영에 가까운 자연 속의 행운의 확률을 뽑은 것이다. 그것도 인간은 단일 세포에서 오늘의 인간이란 위치에 오르기까지 어려 차례의 계속적 오류를 범하는 행운의 추첨을 뽑은 것이다. 이러한 진화 과정에서 우연성은 바로 필연성을 부수하게 된다. 여기서 모노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을 벌이나 약간의 수정을 가하게 된다. 다윈이 이 생물진화는 존재를 위한 투쟁, 즉 적자 생존 원칙에서 발생한다고 말한 데 반해 모노 교수는 오류에 의한 여러 번에 걸친 세포의 재창조는 연속적이 아니었고 좋은 오류와 나쁜 오류 사이에 구별이 생기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연적 선택은 천문학적인 자연의 흐름 속에서 무한에 가까운 작은 부분에 의해 유지되고 확대되고 통일된 것이라고 말한다.
모노 교수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을 언어를 가졌다는데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인간의 먼 조상인 진잔트로프(원시인)시대만 하더라도 인간의 뇌는 고릴라의 그것보다 크지 못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뇌 세포 몇 개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해 진잔트로프에게 똑똑한 발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아주 원시적인 말이었지만 그 말 때문에 그들이 집단화해 다른 동물을 집단적으로 추적,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선택이 압력을 받는다.
즉 사용이탄 필연성은 세포의 재생과정에서 발생된 오류에서 나와 언어를 발달시키고 동시에 뇌를 발달시켜 인지를 창조케 한 것이다 이상이『우연성과 필연성』의 중요한 줄거리다. 모노 이론은 자연과 인간에 어떤 계획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뒤집어 놓았다. 기독교의 신의 예정설을 부정하는 동시에 마르크스-엥겔스의 이론도 부정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연과 인간의 사고에 헤겔의 변증법적 해석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자연은 변증법적 과정이 아닌, 계속적인 오류의 과정을 밟기 때문에 모노 교수는 정신 주원론적 마귀에 의해 변장된 자연법칙에다 사회법칙을 세우려한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고 사회주의의 모순을 지적한다. 모노교수는 『근본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이념 위에 어떻게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모노 이론에 따르면 모든 기성가치는 무너졌다.
남은 것은 오직 과학의 목적이며 역할인 객관적 지식뿐이다. 기성 가치가 붕괴된 이상 삶의 의의는 어디서 찾겠는가? 다행히도 과학의 기초가 되고 있는 지식 자체의 윤리는 남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진실한 지식의 조건으로서의 객관성의 선택이 바로 윤리의 선택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의 윤리가 아마도 인간 내에 있는 초월감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식이야말로 마르크시즘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고·지식·창조의 초월적 왕국을 방위하고 확장하고 살찌게 하는 사회제도 및 정치제도를 낳을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모노 교수는 이 왕국과 암흑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20세기 후반의 인간에게 호소한다.
모노 교수는 서두에 알베르·카뮈의 『시지포스의 신화』를 인용함으로써 스스로 부조리의 철학자로 자처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이 새로운 모노 이론을 놓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인간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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