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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한땀한땀 30년 내공 … 토종 명품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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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앞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가 짓고 있는 ‘0914’플래그십 스토어 공사 가림막. 핸드백의 기초 소재 중 하나인 실로 브랜드 ‘0914’를 한 땀 한 땀 짠 아트 프로젝트다. 가림막 아트 프로젝트는 다양한 핸드백 소재를 주제로 2015년 9월 완공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 [사진 시몬느]
박은관 회장

1일 오후 ‘콜롬보’ ‘H스턴’ 등 초고가 제품 매장이 즐비한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앞. 랄프로렌과 에르메스 매장 사이에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현장을 가리고 있는 가림막이 이채롭다. 흰색 벽에 ‘0914’란 글씨가 한 땀 한 땀 실로 짜여 있다. 공사 중인 빌딩은 ㈜시몬느가 새 핸드백 브랜드 ‘0914’의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를 열 곳이다. 가림막은 핸드백의 기초 소재 중 하나인 ‘실’을 소재로, 핸드백에 장인의 정성이 들어간다는 점을 강조한 디자인 프로젝트다. 핸드백 브랜드 0914는 2015년 9월 14일이 돼서야 세상에 나온다. 빌딩도 그때 완공된다. 가림막 프로젝트는 실을 비롯해 장인의 정성과 도구·가죽까지 핸드백 제작에 필요한 것들을 예술로 표현해 2015년 9월까지 네 차례 더 진행된다.

 또 다른 ‘핫플레이스’인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엔 ‘백스테이지’가 있다. 시몬느가 지난해 7월 세운 ‘핸드백 박물관’이다. 이곳에선 8일부터 12월 29일까지 핸드백을 소재로 한 이색 전시회가 열린다. 여자들이 가방을 보는 심리를 심리학자 김현철 원장이 텍스트로 뽑고, 이를 김용호·홍종우 작가가 시각예술로 변환해 작품으로 표현한다. 가방을 주제로 한 전시회 역시 2015년 9월까지 갖가지 다른 주제로 총 아홉 차례 예정돼 있다.

 0914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핸드백 회사 시몬느는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하지만 글로벌 핸드백 시장에서의 위상은 확고하다. 1987년 설립돼 버버리·지방시·마이클코어스·마크제이콥스·DKNY 등 세계 명품 브랜드 20여 개의 가방을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만드는 회사다. 개발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소재 개발과 디자인·제조 등을 일괄해 납품하는 방식이 ODM이다. 해외에서는 시몬느를 ‘풀 서비스 컴퍼니’라 부른다. 지난해(지난해 7월~올 6월 회계연도) 매출은 6371억원이었다. 올 한 해 6억5000만 달러(약 7000억원)어치의 핸드백을 글로벌 시장에 납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제품들을 판매가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50억 달러(5조40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시몬느 측 설명이다. 전세계 핸드백 시장의 9%, 미국 시장의 30%에 해당한다. 시몬느가 자체 브랜드 핸드백을 내놓기 위해 몇 년에 걸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시몬느 박은관(58) 회장은 “나와 직원 310여 명이 30여 년간 쌓은 노하우를 우리 브랜드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독자 브랜드 출시 배경을 설명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메이드 인 프랑스뿐 아니라 이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도 명품 대접을 받을 만한 경험과 지혜가 쌓였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인문화’를 많이 그려줬지만 이젠 ‘자화상’을 직접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기존 외국 명품 브랜드를 인수해 되살리면 훨씬 빠르고 쉽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한국의 뿌리를 살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브랜드 이름 0914는 그가 아내를 만난 날에서 따왔다.

 브랜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디자인 독창성이 생명이다. 유수 명품 회사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들의 디자인을 참조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안 된다. 6명의 국내 디자이너와 3명의 해외 디자이너가 1년에 한 개 정도만 개발한다는 정신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핸드백 박물관의 전시회는 일반인들에게 0914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예술가들의 눈으로 해석한 핸드백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연예인 마케팅 등 짧은 시간에 승부를 보기보다는 20년 이상 잡고 브랜드 성공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전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국적 뿌리가 살아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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