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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나』걸고 『남』을 지키는 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7년째 소방관생활을 해온 소방경위 정덕수씨(49·서울중부소방서)는 아직도 출동소방차의 「사이렌」소리를 『사람 살리라』는 비명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고 했다.
1943년 경성소방서원으로 출발, 그동안 각종 화재현장에 출동한지도 1만5천여회에 이르렀지만 출동때마다 항상 느끼는 심정이란다.
지금까지 그가 구한 인명은 모두 6백64명. 1만5천회 출동으로 2억원어치의 재산피해를 줄이는데 공헌한 것보다 6백64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 더 보람스럽다고 했다.
작년 한해동안만도 서울시내에선 1천9백12건의 화재가 발생, 5억2백23만여원어치의 가옥등이 재산이 불탔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 불로 78명이 죽고 3백8명이 다친 사실을 더 뼈아픈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저희들의 세계입니다』
어디까지나 인명을 구한다는 것이 화재현장에서의 급선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망자가 생긴 화재때는 진화작업이 끝나도 싸움터에서 패전한 기분에 사로잡혀 씁스름하다고 말했다.
소방관생활 26년째에 1만2천5백여회를 출동한 박성태소방사(48·서울성동소방서)는 그동안 1백50명을 구하고 2천명을 대피시켰지만 지금도 하루 10분씩은 자기 반성을 한다.
오늘도 화재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내몸을 아끼느라 더 구할 수 있는 인명구조에 소홀한 점은 없었나, 지금 당장 불속에 뛰어들 준비는 되어 있는가등 채찍질로 사명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사실 서울의 소방경찰관 6백36명의 경우, 2교대제로 격일근무를 하지만 항상 비상대기의 긴장속에서 지낸다.
당번일때 아침8시30분에 출근하면 다음날 상오10시에 교대하여 24시간동안 차량정비·점검·환경정리·출동으로 눈코뜰새 없지만 비번일때도 편히 쉬지 못한채 화재예방 순찰을 나가고 있다.
지난해 4월12일 서울동대문구용두동 판자촌 화재때의 일이다. 현장에 맨처음 도착한 박씨는 치솟는 불길보다 그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못한 주민파악이 전혀 되지않아 답답했다. 곳곳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데 종잡을 수가 없어 구정물 투성이인 청계천을 가로질러 불길속으로 뛰어들었을때 10여명씩 뭉쳐진채 우왕좌왕하는 주민을 발견, 냉정을 되찾게하고 유도한끝에 무사히 대피시킨후 느낀게 장비현대화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고.
『현재 주어진 장비로 불길속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요』 화염속에 방수복하나로 견디는 실정이 기적같다고 했다. 최소한 필요장비가 방열복·산소「마스크」·방열장갑· 방열장화등인데 전혀 갖춰져 있지못해 걱정이란다.
작년만도 3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모두가 불더미속에서 질식사했지만 다시 그런 소방관 순직이 되풀이 안된다고 장담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1947년12월 소방원으로 투신한 신봉길씨(45·성동소방서 미아파출소장)는 2만여회 출동으로 3백50여명을 구조했지만 『동료가 희생될 때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한사람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 평소 소방관이라는 교양과정은 다섯단계. 구조용기재준비·요구조대상자의 검색·구출·응급가료·후송등으로 삼지만 가장 중요한 과정이 구출활동이다.
불길의 방항을 판단하여 가장 위험한 곳부터 착수하고 연기가 심할땐 「로프」에 몸을 감고 바깥과 연락하는일, 불길이 셀때는 엄호주수 요청, 다수자일때의 유도방법등이 몸에 배지 않으면 오히려 자기목숨마저 버릴 위험에 부딪는다는게 신씨의 지론이기도 했다.
『불이 무서운 사람은 소방관이 될 수 없어요.』
처음 소방원으로 들어가 화재현장에서 무척 당황했었다는 신씨는 『인명우선』이라는 가르침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침착을 회복할 수 있었고 진화작업은 물론, 인명구조활동에도 열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63년 조선「호텔」 옥상화재로 모두 속수무책일때 「로프」를 던져 맨처음 진화작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그속에 사람이 있지않나하고 생각하니 주저되던 마음이 없어져 가능했다는게 신씨의 실토였다.
『정말 인명 구조와 남의 재산을 지킨다는 보람에 살뿐입니다. 내 목숨을 아껴 어떻게 남의 목숨을 지킬 수 있어요?』
소방총경 허환씨는 자기 희생정신으로 뭉쳐진 것이 소방관의 세계라고 자부했다. <원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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