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교향악단의 운영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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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음악의 세계에 있어서도 거센 시대의 물결이 예외없이 굽이치고 있음은 일세를 풍미하다시피 하고있는 재즈음악의 유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재즈선풍의 열도가 더할수록 본격적인 심퍼니·오키스트러가 연주하는 장엄화려한 클래식음악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어지는 것은 인성의 아름다운 자연이요, 좀더 과장하면 이런 멋이 있어 인생은 살 보람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클래식·팬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렇지만 외국의 거장들을 맞아, 1년에 고작 1, 2회 있을까 말까하는 본격적인 심퍼니·콘서트에는 물론, 국내교향악단들의 정기연주회에 모여드는 열렬한 팬들의 수효가 매번 지지않고, 또 심야의 FM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클래식·팬들의 수효가 또한 날로 늘어가고 있다는 현상을 통해서도, 이제 서양음악의 전통은 이땅에서도 우리의 민족문화의 뗄 수없는 한가지(지)로 뻗어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최근 우리의 유일무이한 국립교향악단을 지난 15년간 이끌어오던 상임지휘자 임원식씨가 운영난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데 대해 깊은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사퇴가 그가 말했듯이 단순히 국향의 현재재정으로써는 단원들의 최저생활마저 보장할 길이 없어, 그 책임을 느낀 소치인지 아닌지, 우리로서는 그 진상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어쨌든 우리의 유일한 국향이 상임지휘자조차 없이 변칙운영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사실은 문화에 관심을 가진 국민으로서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문공부산하 국립극장에 소속된 하나의 관기구로서의 현재의 국향이 재정적으로 뿐만아니라, 이와같은 예술단체의 조직원리에 비추어 적지않은 맹점과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만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임지휘자 및 전임부지휘자 각 1명을 필두로 모두 84명으로써 조직된 국향의 1년간 예산은 인건비 1천8백40여만원과 연 8회의 정기연주회 경비 1백94만원등 도합 2천만원 안팎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밖에 이 악단은 월평균 3회의 이른바 후생자금을 통해 1년간 약 5백만원내지 7백만원의 후생자금을 자체정립했었다고 하는데, 이로써는 중견 멤버조차도 월액 고작 2만원(평균1만4천원)정도의 보수를 받을 수 있었을 뿐, 그 때문에 단원들은 저마다 본격적인 연습시간도 빼앗긴채 개인 플레이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적나라한 실정이었다고 한다.
일생을 통한 쉴새없고 몰아적인 정진을 통해서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모든 예술인에게 공통된 요구임은 더말 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90명 가까운 단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보통이상의 높은 수준이 요청되는 심퍼니·오키스트러를 나라의 이름으로 운영한다고 하면서, 그 보수체계나 운행방식등을 전기한바와 같이 상식이하의 것으로 방치해 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국민의 수치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국향도 하나의 국립기관이니만큼 여타 공무원과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변명따위는 무책임한 후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국력이 아직은 국립교향악단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여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모르되, 민족문화 창달에 있어 이미 무시못할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있는 국립교향악단을 현재의 상태로 버려두는것은 너무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1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건설중에 있는 국립오페라·하우스의 준공을 목전에 둔 지금, 운영난때문에 국향이 상임지휘자조차 갖지못하고 단원들은 뿔뿔이 헤어져, 생계를 위해 여전히 개인플레이에만 열을 올린다면, 주인없는 고대 산실을 짓고 잔치를 벌이는 격이 아니겠는가. 한나라의 발전을 위해 종합제찰의 건설이 필수적인 것이라면 그와 똑같은 이유로 제대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국립교향악단의 육성은 나라 전체의 책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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