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인간회복위한 캠페인|휴일없는 해상촉각 통신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연초연휴로 모든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던 지난 1일 부산무선전신국 김정호통신사(39.2급)는 설날도 잊은 듯 무전기를 지키고 있었다. 북양에서 멀리 남태평양에 이르기까지 파도와 싸우는 수많은 선박들이 보내는 전파를 받아 응답하기 10만회. 김씨는 여객선의 승무원과 승객, 각종 선박의 선원들이 무전기 한 대에 목숨을 걸고 SOS의 키를 두드릴 것을 생각하기에 『밤낮이나 휴일조차도 없다』고 했다. 20년동안 남해안의 각 무선국에서 일하는 사이 김씨는 SOS신호만도 3백여회나 수신했다.
똔똔똔.쓰쓰쓰.똔똔똔 이렇게 발신해오는 SOS를 받는 순간은 침몰해가는 선박과 아우성치는 승객이나 승무원들의 모습이, 수만마일밖 해상의 일이지만, 눈앞에 훤히 나타나 긴장되며 초조해진다고 김씨는 말한다. 김씨가 무전기의 키를 두드려 수장되어가는 목숨을 구한예는 많았다. 김씨는 태평양의 괌도 동남방 4백20마일 지점의 해상에서 고려수산소속 원양어선 제71고려호(168t.선장 정은식)가 조난했을 때 숨가빴던 전파작전으로 구출했던 것이 잊을수 없는 보람으로 남아있다.
지난 67년11월11일밤 김씨는 여전히 무전기앞에 앉아있는데 옆자리의 동료 S씨가 맡았던 5백KC에서 감도가 1(보통은 3∼4)밖에 안되는 미약한 SOS를 들었다. 몇번이나 반복되는 똔똔똔.쓰쓰쓰.똔똔똔이란 SOS전파에 다급한 김씨는 국제무선규칙에 따라 태평양연안의 『모든 무선국은 송신을 중단하라』는 부호인 QRT를 치고 SOS발신지점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김씨가 보낸 QRT로 각무선국이 침묵을 지키며 수신만하는 사이 김씨는 『조난선의 호출부호, 위치, 구조에 필요한 사항을 급히 알리라』고 타전.
이 결과 SOS를 발신한 배가 호출부호 HLLZ인 제71고려호임을 확인했으나 위치는 알리지 않았다. 고려호통신사 황금열씨는 국제조난신호규칙을 지키지 않은채 다급한대로 『사람살리라』고만 우리말로 발신해 왔다고-. 그는 무전기를 잡고 계속 위치를 알리라고 타전한 결과 조난선박이 파고 10m 풍속 20m(초속)의 태풍 37호의 중심권인 괌도 동남쪽 4백20마일 해상이라는 사실을 수신, 각 무선국에 긴급 신호로 이 사실을 통보했다.
김씨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일본 나가사끼(장기)무선국, 대만의 고웅무선국, 괌도의 미군무선국과 연결하는데 성공했으며 조난해역 근해에 있던 일본화물선 노르웨이·마루와도 교신에 성공함으로써 제71고려호가 극적으로 구조됐다는 것. 그는 『이같은 우리 통신사의 노력은 햇빛을 본일이 없지만 이 교신에 성공한 순간이야말로 사람을 살렸다는 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고 『이럴때면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막걸리 파티를 열지요』라면서 웃는다. 『무전기의 감도가 낮아 SOS를 포착하지 못할때면 등골이 서늘할 지경입니다….』 김씨는 지난번 남영호침몰사건때 『우리 무선국을 비롯 연안무선국이 남영호의 SOS를 받지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며 『남영호에서든, 무선국에서든 어딘가 잘못된 점이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고 『어쩐지 내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져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고 했다. 20여년동안 무전기와 싸워오는동안 김씨는 『남영호사건때만큼 좌절감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고도 했고 『고려호의 예처럼 통신사가 서둘러 위급할때 가장 중요한 조난지점을 알리지 않는 경우로보아 각종 선박의 통신사를 철저히 교육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부산=김영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