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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그 전환점에 서서|반성과 점검을 위한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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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상 첫 시도였던 본격적 경제개발은 이제 2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60년대형 경제개발이 사실상 끝맺음되는 71년을 맞아 60년가 배태한 『개발의 제기상』을 『반성』하고 다음 단계를 위해 정립돼야할 『개발의 지향』을 여러 측면에서 점검하고자 관계전문가들로 좌담회를 마련해본다. <편집자주>
▲사회=새해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마무리되는 해입니다. 그런 때라서 l, 2차 5개년 계획의 모든 문제들이 정리돼야할 해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3차 5개년계획이 입안, 확정되고 이와 관련한 3차 계획의 집행기반을 조성하기위한 준비작업이 있어야할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새해는 60년대의 경제개발이 사실상 끝나고 새로운 연대의 개발계획이 확립되는 중요한 한해로 볼수 있겠습니다. 60년대에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개발계획은 어떤 특징을 갖고 진행했으며 어떤 성과를 거두었고 그와 병행해서 부작용은 없었던가. 또 그러한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정돈, 결산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같은 l, 2차 계획의 반성을 토대로 3차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정립돼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60년대에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개발계획의 특징부터

<정책.생활간 갭으로 분열과 사회적단층생겨>
▲김만제=우리나라가 해방이후 경제개발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60년대이며 개발계획의 특징은 공업화로 볼 수 있겠지요. 각 계획의 기본목표가 그때그때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l차 계획의 기본목표는 사회·경제전반에 걸친 악순환의 제거였고 2차계획의 목표는 산업구조의 근대화, 구체적으로 공업화와 수출증대였읍니다. 그리고 발표단계에 있는 3차계획의 기본목표는 수출증대와 산업개발입니다. 또한 60년대는 우리나라가 식민지경제에서 벗어나 성장경제로 돌입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공업화의 초기단계를 맞아 개발습득과정을 겪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불균형을 통해 정부는 성장경제에 있어서의 정책을, 기업은 경영방식을, 노동자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었읍니다.
▲서기원=개발계획의 추진과 병행해서 사회적으로는 물질주의적 경향이 앞서 윤리의 타락, 도의관념 저하등의 폐단이 생겼습니다. 정부의 정책과 일반 생활감정간에 갭이 생긴 것 같지요. 정부는 60년대 초반에 70년대에 들어서면 모두 잘 살게될 것이라는 꿈을 안겨주었읍니다. 도시 중산층은 70년대에는 생활의 혁신과 상당수준의 선진국에 맞먹는 소비생활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책의 성과가 대중생활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대중에는 분열과 단층이 생겼습니다. 한가지 예로 4, 5년전에 마이카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동차공업이 시장성을 잃고 있다는 문제가 있읍니다.

<심한 격차등 부작용으로 국민의 유대감 없어지고>
▲사회=1, 2차계획의 성과라면 어떤 것을.....
▲김윤환=60년대는 공업기반을 구축한 시기였고, 70년대는 공업화를 완성해야할 때입니다. 경제규모의 확대, 산업구조의 고도화는 60년대의 성과로 볼수 있겠지요. 하지만 산업간의 불균형, 농·공간의 소득격차를 크게했다는 부작용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김만제=성장경제의 습득과정에서 기업은 보호받았고 소득격차와 사회긴장이 용인돼왔습니다. 60년대 개발과정의 경제적인 특징은 ①특혜 ②인플레 ③실업상존 ④독점 ⑤토지투기등 5개로 압축해 볼수 있겠는데 이런 것들이 일을 하지않고도 요행으로 잘살 수 있다는 가치관을 형성해 놓았읍니다. 여기에서 제2경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겠지요.
▲이보형=1, 2차개발계획의 야망은 우리 역사상 가장 큰것이었습니다. 영국은 18세기말부터,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제패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l85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던 영국의 자본주의 대국으로서의 위치가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이 있기까지는 명치유신이후 1백년이 걸렸습니다. 선진국들이 50년∼l백년 걸려 성취한 것을 우리는 10∼20년으로 단축하려고 하니까 부작용이 따르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계획을 입안할 당시에 경제적요인과 비경제적요인을 조정하는데 정책당국자가 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지금 나타나있는 부작용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국민이 하는 일들이 원칙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염치가 없어요. 잘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의 실정이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무한정 사치스럽게만 살려고 합니다. 여기서 국민공동체로서의 강한 유대감이 결여되는 것입니다.

<10여년 불안견뎌온 주부 잘살게 된다는 보장감을>
▲사회=60년대의 개발정책이 경제의 최소단위인 가계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읍니까?
▲강신재=불안정한 생활속에서도 주부들은 인내심이 강해 잘 견뎌 왔습니다. 가계의 불안정은 우선 물가상승때문입니다. 1, 2년후를 전망할 수가 없습니다. 표준을 잡을 수가 없고 10여년을 불안에 쫓겨왔습니다.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읍니다. 잘못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정부의 눈에띄는 사업들입니다. 무슨 일을 하나 완성해 놓고는 얼마 안가서 다시 허물어 뜨리고, 고치고 합니다. 도로같은 것에서 많이 보지요. 처음에는 약간의 희망을 주지만, 곧 실망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일들이 불안정한 가계에 설상가상으로 더욱 큰 불만을 안겨 주지요. 지금은 못살지만 언젠가는 잘 살게 된다는 보장감을 가질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겠어요.
▲사회=가계의 불안이 인플레에만 원인이 있는 것일까요. 소비패턴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서기원=무어라고 해도 60년대가 50년대보다 물가적으로 윤택해진 것만은 사실일겝니다. 문제는 심리예요. 상대적인 심리, 궁핍감, 충족되지않는 욕구불만에 있습니다. 이웃에서 텔리비젼을 들여놓으니까 나도 텔리비젼을 사야겠다는, 전시효과에 압도되어 쫓기는 지지않겠다는 심리-바로 그것입니다.
▲사회=60년대가 70년대에 넘겨준 어려운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만제=나는 경제정책의 시간적 요소를 중시합니다. 개발과정에서 정책의 집행과 결과사이에는 항상 긴 시차가 있기 마련인데, 60년대 후반기에 우리가 예상했던바의 문제들-그때까지만해도 잠재적이었던-누적된 문제들이 지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부실기업이 있습니다. 부실기업은 어제, 오늘 생긴것이 아닙니다. 60년대의 보호아래 자라온 기업이 이제 보호와 지원을 줄이려 하니까 부실화합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70년대에 능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겠읍니다. 소비풍조도 불합리했고, 정부가 집행한 정책도 비능률적이었읍니다. 정책의 비능률성은 지금 국제수지, 금융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읍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보다 상식적인 방안추구돼야>
70년대에는 경제의 비능률을 제거하고 세 과정으로 들어가야 하겠는데 재정·금융·국제수지 여러부문중 어느 한 가지 문제가 두드러지게 비능률적이라고 지적하기는 곤란합니다. 비능률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의 비능률을 해결한다고 해서 성장과정에의 돌입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이같은 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상식적인 방안이 추구돼야겠습니다. 어렵게 생각하면 정치를 논해야 되고 문제가 복잡해 집니다.
▲사회=60년대가 역사적으로 종전의 어느 시대와 비교될 수 있을까요.
▲이보형=19세기중엽 남북전쟁을 치른후의 미국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남북전쟁을 분기점으로해서 그 이전이 농촌시대, 이후가 기계문명시대로 구분되는 미국사회에서 전쟁직후 성공의 척도는 돈이었읍니다. 그래서 이시대를 도금시대(Gilded Age)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바로 도금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습니다. 급속한 도시계획으로 변모한 서울의 모습은 나같은 서울토박이에게는 오늘의 서울이 과연 서울이냐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큰길에서 조금만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40∼50년전의 서울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급속한 발전에 따르는 좋은 점과 나쁜점을 아울러 갖고 있습니다.

<『저축하라』는 표어옆에 『소비하라』구호로 혼선>
정부가 하는일에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저축하라는 표어가 있는가하면 눈에 보이는대로 모두 소비하라는 구호도 있읍니다. 우리는 과연 저축을 해야할 지, 소비를 해야할 지 알수가 없읍니다.
▲서기원=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의 지배도가 지나치게 강합니다. 권력의 끈을 잡아야 성공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연.혈연등 근대화과정에 역행하는 섹셔널리즘이 만연돼있습니다.
권위의식과 권력숭배적인 요소가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한 경제의 능률을 찾기는 불가능합니다. 내일에 대한 확신-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부터 궤도에 올려세우는 노력이 있어야겠습니다. 오늘의 이러한 현상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고위정치지도층에 있습니다. 대인관계마저 상품화.정치화하고 만사가 정치지향적으로 돼있는 지금의 현실은 정치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기전에는 구제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경제의 정치지향이 문제|교육된 인력의 과부족도>
▲사회=71년을 맞아 이것만은 꼭 고쳐야겠다는 것이 있으면....
▲강신재=그 문제에 앞서 정부에 할 얘기가 더 있습니다. 교육된 인력의 과부족현상을 해결하고 노동을 정당한 가치로 살 수 있게 돼야겠읍니다. 일정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보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윤환=인력문제도 3차 계획에서 심각히 고려해야 할 대상입니다. 인력이 남아도는 것은 인문·사회계통과 공과일부이고, 기술부문은 전반적으로 모자랍니다.
기술부문에서도 약제사는 남는 편이나 전기·기계분야는 부족하며 기능공의 원천인 고졸자가 특히 모자랍니다.
임금의 적정수준이 얼마인가는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이면 기업가는 채산을 맞추기가 어렵게 돼있읍니다.
한국경제구조가 어딘가 잘못돼있다는 증거입니다.
기업이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업자체의 체질개선, 경영합리화를 통해 사채의존도를 낮추고 코스트도 절감해야겠어요.
▲이보형=정부가 설정한 경제계획의 목표중에 납득이 안가는 것이 많습니다. 우선 목표의 필요성을 철저히 계몽했으면 합니다. 효율적인 경제개발계획 집행을 위해 조정할 필요가 있는 비경제적인 문제들을 예로 들자면 도덕재무장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실현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있지 않는데 아무리 많은 구호를 만들어 본들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보다 급한 것은 지도층이 몸소 시범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는 호화주택들을 없애고, 적어도 정부의 고관들은 이런 집에서 살지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3차 계획의 문턱에서 개발의 주도체, 투자재원조달, 세제·금융개선등 여러가지 문제가 많이 논란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쳐져야할 점들은.....
▲김만제=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모든 행위의 기준, 즉 행동준칙이 정치지향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읍니다.
우리가 자유경제체제를 채택한 이상 거기서 생기는 문제들은 자유경제에 알맞는 해결방안으로 풀어 나가야 할 것인데 정부는 이를 무리하게 행정의 힘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체제와 메커니즘은 변해왔는데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정부의 정책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정책수단의 선택과 운영방법은 구태의연합니다. 걸핏하면 정부가 직접 개입하려들고 심지어는 사람의 사고방식까지 바꾸어 보겠다는 태도로 나옵니다. 이는 커다란 착오입니다.

<모든 분야에 상벌제도를|부실기업 도산감수해야>
우선 경제적으로 안정을 확보해야겠습니다. 일부 정책당국에서는 고도성장을 지속하기위해 인플레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일부 지식층과 저소득층에서는 인플레 고통을 이상더 겪지 않아야겠다는 주장입니다. 『고도성장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는 반론입니다.
조세부담이 무겁고 금융은 특혜화했다고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조세부담이 총체적인 면에서는 높지 않습니다. 부담이 무겁게 느껴지는것은 불공평성에 원인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과 지원부문은 세금을 내지않고 있어 내는 사람은 점점 더 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음의 민간주도형 경제개발에 관한 문제로 민간주도형 체제에서 모든 투자재원을 민간이 동원할 수는 없읍니다.
가계의 소득에 대한 저축비율이 3·5%에 불과한 상황에서 적정성장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투자재원을 가계로부터 동원한다는것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몇년간은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3차 5개년계획기간중 목표로 하고 있는 성장율 8·5%는 어떻게 해서든지 달성해야할 수준입니다. 이것은 후생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소득재분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일이 많겠지만, 그중에서 꼭 한가지 말하고 싶은건 모든 분야에서 상벌제도가 확립되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부실기업은 도산을 감수해야지요. 과거 20년동안 우리사회의 상벌제도는 너무 불투명했고, 이로인해 가치관과 생활환경에 여러가지 혼돈이 초래되기도 했읍니다.
▲이보형=과거 기업이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인권사상과 시시비비 정신에 힘입은 것이었읍니다. 언론의 자유는 사회개선에 절대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집단소비위한 지출늘려 생활환경 개선에 힘써야>
3차계획기간중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은 이밖에도 비가시적인 분야의 경제적 성과를 높여달라는 것입니다. 도로의 기공식만 할것이 아니라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는 도시의 하수도시설같은데 주력해주십사하는 것입니다.
▲김만제=개개인의 후생을 정부가 돌봐줄 수 없는 입장에서 변소·상하수도·주택같은 집단소비(Collective Consumption)를 확보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아직 최저한의 생활환경도 갖추지 못하고 있읍니다. 정부가 개개인의 임금을 올려주거나 세금을 내려줄 수도 없는 형편이라면 집단소비에 대한 정부지출의 증대로 생활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이 후생증진에의 첩경일 것입니다.
▲김윤환=70년대에는 건설과 생활이 조화되는 방향이 모색돼야겠습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후진국에서는 사회보장보다 임금인상이 낮고,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증대가 더 낮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읍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과잉투자상태라고 합니다. 금년에는 임금문제가 아니라 실업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 같습니다.
▲사회=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석자>가나다순
강신재(작가) 김만제(서강대학교·경제학) 김윤환(고대교수·경제학) 서기원(작가) 이보형(서강대교수·서양사)
사회=박동순 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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