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모스크바에 '신개념' 서점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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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작가들. 좁은 골목의 작은 서점이지만 `가치`를 판매하려는 책방이다. [리아 노보스티]

‘도도 서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로즈데스트벤스키(크리스마스) 거리에서 길을 잘못 들어 작은 처마 밑의 작은 문을 지나쳤다. 골목엔 이렇게 작은 문이 수백 개 있었으니까. 2009년 문을 연 ‘도도’의 입구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 같아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곳엔 책도 책이지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토베 얀손의 동화에 나오는 무민트롤 모양의 가구들, 재밌는 포스터, 수제 인테리어 소품 같은 신기한 것들 천지였다. 여기 책방 맞아?

기껏해야 15㎡에서 50㎡밖에 안 되는 아담한 공간, 눈길을 사로잡는 분위기, 풍부한 문화적 요소가 곁들여진 요즘 신개념 서점들. 그곳은 이미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모임·강연·만남이 이루어지고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 중요한 것은 주인의 취향이다. 분위기도 그가 결정하고 책도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 대신 잘 팔리지는 않지만, 미학적·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책들이 쌓여 있다. 요컨대 ‘가치 있는 책’에 ‘상업적 문학’이 밀려나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그런 책방 중 하나인 ‘포드피스니에 이즈다니야’의 미하일 이바노프 사장은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독자에게 가장 좋은 지식서를 판매하려고 한다. 대중시장을 상대하긴 하지만 더 좋은 책을 엄선해 모두가 책을 더 찾도록 하자는 게 사업 철학”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책방 ‘매직 북룸(Magic Bookroom, http://www.dodo-space.ru/)’. 2009년에 만들어진, 크지는 않지만 잘 알려진 네트워크형 서점인데 루이스 캐럴의 작품을 주로 다룬다. 공간이 아담하다. 이 서점의 공동 창시자이자 저명한 모스크바 출판업자 샤쉬 마르티노바는 “우리가 바라던 대로 스노비즘과 허식에서 벗어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과학·예술·공예·기술 등 책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고 자부한다. ‘매직 북룸’에선 작가와의 만남, 강연, 마스터 클래스 이외에도 루이스 캐럴의 동화와 스토리텔링 기법을 모티브로 한 ‘도도 파티’도 열린다.

시내 불바르 순환도로의 치스티 프루드에서 멀지 않은 포크로브카. 그곳의 작은 2층 건물엔 작은, 오래된 궤짝같이 생긴 서점 ‘호다세비치(http://xodacevich.ru/)’가 있다. 넓이는 15㎡(약 4.5평) 정도. 주인 스타스 가이보론스키는 “가끔 우리 책방을 유럽에서 제일 작은 서점이라고 소개한다”며 웃는다.

책은 책장 외에 창가에도, 바닥에도 쌓여 있다. 한번 뒤지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물건 보듯 끝도 없이 뒤지 게 될 것 같다. 직원들은 요술지팡이 같다. 폐지로 공책을 만들기도 하고 코딱지만 한 공간을 책나라로 만든다.

책방은 2012년 문을 열었는데 헌책도 볼 수 있고, 몇 코페이카(몇십원)짜리 혹은 공짜 책들이 잔뜩 쌓인 상자에서 책을 고르는 특별 서비스도 한다. 2개월·6개월·1년 단위 회원권도 발행하고 월 250루블(약 8000원)만 내면 모든 책을 10일간 대출받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출판된 책은 모두 찾아내 주는 ‘책 탐정’이라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가이보론스키에 따르면 ‘정말 구하기 힘든 책’은 서비스료가 30~45달러다.

오락과 책 탐정 서비스 제공에 더해 안락한 카페까지 원한다면 북클럽 ‘기페리온(http://hyperionbook.ru/)’을 찾으면 된다. 이 서점은 뮌헨에 자매기관인 ‘고로드(GOROD)’라는 러시아 문화센터까지 냈다. 신학기에 ‘기페리온’과 GOROD는 교육관광 부문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컨셉트 서점 ‘프세스보보드니’에서 포즈를 취한 주인 부부. [Press Photo]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신개념 서점이 생겼다. 1호는 2010년 1월 문을 연 ‘포랴독 슬로프(wordorder.ru)’이다. 50㎡ 크기 서점의 책꽂이엔 8000여 권이 꽂혀 있고 그중 논픽션도 많다. 벽에는 강연과 영화상영 날짜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저명한 작가나 지식인 또는 연출가들이 출연하기도 한다.

2011년 드보르초바야 광장 근처엔 ‘프세 스보보드니 (vse-svobodny.com)’가 문을 열었다. “책을 고를 때 저희만의 기준이 있습니다”라고 ‘프세 스보보드니’ 공동 사장인 아르촘 파우스토가 말했다.

이런 서점은 이름도 독특하다. 예를 들면 ‘프세 스보보드니’ 공동 사장 류보비 벨랴츠카야는 “러시아에선 영화나 회의가 끝나면 ‘프셈 스파시보(모두들 감사합니다)’, ‘프세 스보보드니(모두에게 자유를)’라는 정해진 표현을 한다. 책방 이름으로 말 그대로의 의미를 가져다 쓴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시내 아르바트 거리 건물 1층엔 대형 서점이 있는데 이름이 ‘돔 크니기(서점)’다. 책 파는 곳의 이름이 ‘서점’이라니!.

소비에트 시절의 서점 중 하나인 ‘포드피스니예 이즈다니야’는 2012년에 마치 불사조처럼 부활해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입구쪽 벽에 4m짜리 책장이 있고 책장을 따라서 서점의 하이라이트인 나무 사다리가 있다(4m를 오르려면 필요하다). 나머지 부분은 적극적이고 활발한 직원이 아니었다면 아마 너무 심심한 인테리어가 됐을 것이다. 직원들은 계절마다 꽃장식을 바꾸고, 방문객을 위해서 사과도 준비해 두고, 화분에 재미있는 이름을 적기도 하고(‘열매 주렁주렁 미니 오렌지 나무’ 같은 것), 책 표지에 평이나 메모를 재미있게 적어놓기도 한다. 얼마 전 이 서점은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식 말들이 적힌 유머 엽서를 출시했다.

세 명의 공동 대표 중 하나인 미하일 이바노프는 “인테리어를 아주 다르게 바꾸고 책을 더 늘렸다”며 “처음엔 지식서와 아동문학을 취급했는데 점차 외국어 번역서들과 예술·디자인·패션 관련 책들도 추가로 채웠다”고 말했다. 음악이 잔잔히 깔리는 서점 안쪽에선 차를 마실 수 있는데 고객이 직접 듣고 싶은 음악을 틀 수 있다. 얼마 전 서점은 페테르부르크 공직자들에게 도시 역사와 개발에 관한 책을 선물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바노프는 “이분들이 선진 경험에도 관심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료나 트베리티나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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